[사설] 한·일관계 재정립 과제 남긴 위안부 TF 발표

입력 2017-12-27 18:48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TF’가 27일 발표한 보고서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과정이 모두 드러났다. 청와대는 외교부를 제쳐놓고 직접 나서서 비밀 협상을 벌였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등과 관련된 비공개 협의 결과가 공개되지 않은 합의문에 담겼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런 의혹을 모두 부인했는데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심지어 청와대는 국제무대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하지 말라고 외교부에 지시했다. 일본 정부가 합의 정신을 왜곡하고 터무니없는 공세를 벌이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못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한·일 위안부 합의의 본질은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 및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실질적 지원에 있다. 외교장관 공동합의문이 과거사에 발목이 잡힌 양국 관계를 미래를 향해 발전시킬 발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 차원의 책임 통감, 아베 신조 총리가 총리 자격으로 사죄 표명,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 회복 등이 명시됐다. 이 조건이 충족된 것을 전제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돈을 냈으니 한국은 더 이상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는 식으로 합의 취지를 훼손했다. 그리고는 빚 독촉 하듯 우리 정부에 약속을 지키라고 압박하고 있다. 심지어 일본 언론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한국 정부가 약속했다는 기사를 쏟아내며 사실관계마저 왜곡했다. 피해 할머니들이 오죽하면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우고 25년 동안 한 주도 빠짐없이 수요일마다 집회에 나섰는지에 대한 고려는 조금도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인권 문제는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한다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당당하게 일본 정부의 잘못된 태도를 지적해야 한다. 합의대로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고 상처 치유에 나서도록 일본 정부에 촉구해야 한다. 피해자를 모욕하는 일본 우익 세력을 자제시키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부 간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나설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국제사회 앞에서 발표한 약속이라는 점을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과거사 논쟁을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자는 양국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 정부는 이제 피해자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위안부 합의의 의미를 설명하고 협상 과정에서의 잘못을 사죄해야 한다. 그런 절차를 밟으며 조금씩 신뢰를 쌓은 뒤 일본 측과 머리를 맞대고 미래를 열어갈 방법을 논의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위안부 합의 자체가 무효라는 여론에 휘둘려 국가의 신뢰를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