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개막 ‘리차드 3세’
황정민 단독 주연으로 확정
의도 맞는 안정된 연출 장점
美·英 등에서 일반적
주연급 배우 적은 한국은
더블·트리플 캐스트가 대세
지나친 상업화로 외부 영향 커
투자한 만큼 이윤 얻으려
공연이 장기화되면서 확산
#1. 내년 2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하는 연극 ‘리차드 3세’에서 주연 리차드 3세 역으로 10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황정민은 ‘원 캐스트’로 한 달 동안 연기한다. 황정민은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예전 선배들이 더블 캐스트를 맡게 되면 자존심을 상해하시던 기억이 난다”며 “공연 기간 체력 안배하는 것도 배우 몫인데 왜 더블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원 캐스트에 겁 없이 도전해봤다”고 말했다.
#2. 최근 서울 종로구 대명문화공장에서 시작한 연극 ‘앙리할아버지와 나’에서 앙리할아버지 역으로 배우 이순재와 신구가 출연하고 있다. 신구는 기자회견에서 “더블 캐스트를 선호하지 않는다”며 “요즘은 제작자가 먼저 배역을 더블로 해놓기 때문에 배우가 싫어하면 작품을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더블이다 보니 연습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내용이 부실해져서 선호하지 않지만 연극을 하기 위해서는 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원 캐스트는 어떤 의미일까.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원 캐스트의 가장 큰 장점은 주연 배우 한 명이 연출과 제작진의 의도에 맞는 최선의 무대를 관객들에게 안정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배우가 주연을 맡으면 여러 배우가 맡을 때보다 연출가를 비롯해 주·조연 및 앙상블 배우와 호흡을 맞출 시간을 더 가질 수 있다. 또 배우도 공연을 하면서 다른 활동을 병행하는 것보다 해당 극과 배역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요즘 국내에서 더블이나 트리플 캐스트는 일반적이다. 하지만 연극과 뮤지컬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원 캐스트가 정상이고 2∼6명 배우가 있는 경우가 비정상”이라며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에서는 한 배우가 대부분 무대에 출연하고 커버 배우가 간혹 선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시스템이 익숙하지 않아 주연이 하루만 아파서 바뀌면 환불 소동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멀티 캐스트가 뿌리내린 건 언제부터일까. 국내에서 본격화되기 시작한 건 2001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2004년 ‘지킬 앤 하이드’ 이후다.
그 다음부터는 원 캐스트로 공연을 이끄는 것이 오히려 화제가 됐다. 2012년 뮤지컬 ‘레 미제라블’에서는 정성화가 원 캐스트로 10개월 대장정을 이끌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연극 ‘햄릿’의 배우들은 원 캐스트로 한 달 공연을 소화했다. 올 초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 옥주현은 두 달가량 홀로 배역을 맡았다.
국내에서는 원 캐스트를 왜 찾아보기 힘들까. 공연계 내부 요인보다는 환경의 변화와 시장 확대에 따른 외부 요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조용신 뮤지컬평론가는 “티켓파워가 있으면서도 장기로 출연할 수 있는 주연급 배우가 흔하지 않다”며 “멀티 캐스트는 시간을 거치면서 한국적 해결책으로 자리 잡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이라도 불편하면 유지되지 않았을 텐데 계속되는 것을 보면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필요성이 충족되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김방옥 연극평론가는 “산업의 변화에 따른 외적 영향이 크다”며 “연극의 상업화와 장기화에 따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한 배역에 한 배우… 연극·뮤지컬서 ‘원 캐스트’ 의미는
입력 2017-12-28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