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출판결산] 다양한 책 쏟아져 ‘웃고’ 독자 마음 못잡아 ‘울고’

입력 2017-12-28 00:01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에 있는 기독교서점 ‘생명의말씀사’에서 한 독자가 책을 살펴보고 있다. 신현가 인턴기자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기독교 출판계는 다양한 책들을 쏟아냈다. 좋은 시도도 많았지만 한국교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만한 대작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운 한 해였다. 출판 시장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인기와 구매력이 검증된 저자들의 과거 저서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점령하는 역주행 현상도 빈번했다.

“종교개혁 관련서 숫자는 많았지만”

출판사마다 너나 할 것 없이 종교개혁 관련 서적들을 앞다퉈 내놨다. 번역서를 비롯해 평신도, 목회자, 교수 등 다양한 저자들의 시선에서 독일의 종교개혁을 바라본 책들이 출간됐다. 하지만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루터의 재발견’과 더불어 우병훈 고신대 교수의 ‘처음 만나는 루터’(IVP) 정도를 제외하고 크게 주목받은 책을 찾긴 쉽지 않았다.

종교개혁 관련서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인문분야 출판사들이 내놓은 책들이 꼽혔다. 역사학자인 서울대 박흥식 교수의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21세기북스), 사회학자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의 ‘루터와 종교개혁’(길), 번역서 ‘루터의 두 얼굴’(평사리)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고재백 기독인문학연구원장은 “박 교수의 책과 ‘루터의 두 얼굴’은 기독교만의 관점에서 벗어나 마르틴 루터의 공과 과를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신간보다 구간 강세…베스트셀러 차트 역주행 빈번

올해 출판계의 가장 특이한 점은 베스트셀러 목록이 들쑥날쑥했다는 것이다. 많은 출판사 관계자들이 “올해는 도통 독자들의 마음을 모르겠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출판사마다 애써 내놓은 신간은 쉽게 묻혀버린 반면 오래전 출간된 책들이 오랫동안 순위를 점령했다.

영화 상영에 힘입어 주목받아 차트에 진입한 ‘예수는 역사다’(두란노)가 대표적이다. 두란노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롱런을 이어갔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팀 켈러 뉴욕 리디머교회 목사의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빠진 날은 거의 없었다. 그의 신간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이나 ‘팀 켈러 하나님을 말하다’, ‘팀 켈러의 예수, 예수’ 등이 출간될 때마다 그의 과거 출간 서적이 함께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했다. 2010년 출간됐던 게리 채프먼 박사의 ‘5가지 사랑의 언어’(생명의말씀사) 역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일반 출판사들의 틈새 공략 눈길

기독교출판사가 아니라 일반 출판사에서 나온 기독서적들이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눈길을 끈다. 지난달 출판사 이와우에서 나온 김형석 교수의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는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며 한 달도 안돼 2쇄까지 팔려나갔다. 같은 출판사의 책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역시 3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이 시대 크리스천은 교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동시에 내가 믿고 있는 신앙과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서는 더 알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며 “이와우의 책이 그런 독자들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준 것 같다”고 말했다. 또 ‘P31’로 유명한 하형록 팀하스 회장의 책 ‘페이버’(청림출판)도 독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다.

다음세대·여성 분야 책은 올해도 부진

어린이 청소년 관련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책이 드물었다. 추천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교회가 다음세대를 걱정만 할 뿐, 그들에게 필요한 지적 공급은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출판계에서 올해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며 주목받은 것과 달리, 기독교 분야에서는 눈에 띄는 페미니즘 관련 책이 없었다. 관련 분야의 고전으로, 이제야 국내에 번역 소개된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신앙과지성사)와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 신학대학원의 강남순 교수의 개정판 ‘페미니즘과 기독교’(동녘)가 손꼽힌다.

한 출판사 마케팀장은 “페미니즘 관련 책을 냈다가 호평을 받기보다는 괜한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보니 출판사로서는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며 책을 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신현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