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 해약 5년간 54% 급증
금리인상 탓 내년엔 더 늘 듯
납입 일시중단·감액 제도 등
해약 부담 줄일 서비스 챙겨봐야
직장인 한모(46)씨는 지난해 초 10년 넘게 유지하던 변액종신보험을 깼다. 자녀 학원비 등 지출이 늘어난 데다 매달 나가는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65만원이 부담스러웠다. 은행 대출을 늘려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려 했지만 대출심사 강화로 추가 대출도 어려웠다. 다른 보험에서 약관대출(보험금을 담보로 빌리는 대출)을 받았지만 이율이 연 8%가 넘어 고민이 컸다. 결국 한씨는 손쉽게 목돈을 쥘 수 있는 보험 해약을 선택했다.
한씨처럼 생명보험을 해약하는 가입자가 최근 5년간 50%가량 증가했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다 보니 보험을 깨 생활비에 보태는 서민이 늘고 있는 것이다. 보험 해약이 이어지면 의료비 공백 등에 노출될 수 있다.
생명보험협회는 지난해 생명보험 계약해지 건수가 659만3148건으로 2011년(427만7775건)보다 54% 늘었다고 26일 밝혔다. 이 가운데 보험료를 내지 못해 계약이 깨지는 효력상실 건수는 2011년 124만3382건에서 지난해 220만3336건으로 77%나 치솟았다. 빠듯한 가계 살림에 보험료 부담을 이기지 못해 자발적으로 보험을 깨거나 보험 효력을 상실하는 가입자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이런 추세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 은행권 대출 이자는 더 뛰게 된다. 생보업계는 가계부채 급증으로 원리금 부담이 상당한 상황에서 이자 인상이 보험 해약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한다.
가계가 처한 상황은 심각하다. 가구 소득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대출이 급증했다. 통계청 등이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가구 소득은 2015년보다 2.6% 느는 데 그쳤다. 반면 가구 부채는 지난 3월 기준으로 전년보다 4.5% 뛰었다. 여기에다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를 위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목돈이 필요한 서민이 보험 해약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한층 높다.
문제는 당장의 목돈을 위해 보험을 해지하면 그동안 낸 보험료에 비해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보장성 보험의 경우 가입한 지 7∼10년을 넘지 않은 보험을 깨면 손실을 볼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 해약 후 질병이 발생하거나 사망하는 경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험을 해지했다가 나중에 가입하면 연령이 높아지면서 보험료가 오른다. 중간에 고혈압 등 질환이 생기면 보험 가입이 거절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생보협회는 바로 해약보다 보험료 부담을 줄여주는 각종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조언한다. 적립금 인출이 자유로운 유니버설 보험의 경우 의무납입 기간이 지나면 보험료 납입을 일시 중단할 수 있다. 납부한 보험료에서 인출도 가능하다. 나중에 받을 보험금을 깎는 식으로 보험료를 낮추는 감액 제도도 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팍팍한 가계경제… 보험부터 깼다
입력 2017-12-27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