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화 “국가대표는 온 국민과 함께 뛴다… 자신감 가져라”

입력 2018-01-01 05:00
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이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탁구단 훈련장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현 감독은 1988 서울올림픽의 경험담을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임하는 후배들에게 전했다. 용인=최종학 선임기자
서울올림픽 당시 여자 탁구 복식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건 현 감독(왼쪽)과 파트너 양영자가 시상식에서 기뻐하는 모습. 대한체육회 제공
1988 서울올림픽 탁구 복식 金 현정화 마사회 감독

“얘들아 자신감을 갖고 국민의 성원을 믿는다면 꿈을 이룰 거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우리나라 첫 올림픽이었던 1988 서울올림픽 이후 꼭 30년 만에 열린다. 30년 전의 스타들은 모두 은퇴해 선수지도의 길에 접어들거나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자식뻘 되는 평창올림픽 참가 후배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서울올림픽을 빛낸 최고 스타였던 현정화(49)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을 만나봤다.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훈련장에서 만난 현 감독은 선수 지도에 여념이 없었다. 30년 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당시처럼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특유의 무표정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나이로 여자 탁구 복식에서 최고의 자리에 섰던 현 감독은 “벌써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게 30년이나 됐나” 하며 감회에 젖었다. 그는 국민의 성원이 자기 능력의 몇 배를 발휘하도록 한 원동력이라고 소개했다. 현 감독은 “홈 관중들의 응원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수많은 국내 팬의 응원을 받으면서 젖 먹던 힘까지 짜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성원 못지않게 국내 첫 올림픽에 대한 부담감도 만만찮았다. 현 감독은 “86 서울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주요 국제대회에서 중국을 꺾었다”며 “이로 인해 올림픽 금메달이 당연한 분위기여서 부담감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금메달을 딴 직후 “기쁨보다는 드디어 숙제를 마쳤다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할 정도로 당시 마음고생이 심했다.

첫 올림픽을 맞는 선수들과 체육계의 각오는 남달랐다고 한다.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개최가 확정된 후부터 체육계는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무언가를 이뤄보자는 열망도 컸다. 현 감독은 “올림픽 개최 확정 이후부터 메달을 노리고 대한탁구협회 등에서 나와 같은 유망주 육성에 박차를 가했다”며 “오직 올림픽 메달을 위해 86 서울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3년 동안은 복식에만 집중했다. 올림픽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나 협회 지원 등이 모두 잘 맞아떨어졌다”고 언급했다.

종목은 다르지만 올림픽을 앞둔 후배들에게 현 감독이 가장 강조한 것은 ‘자신감’이었다. 그는 “운동은 의지의 싸움이다”며 “본인 의지가 중요하고 스스로와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할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키웠고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고 소개했다.

또 하나는 태극마크에 대한 자부심이다. 현 감독은 “처음 태극마크를 단 게 10대 후반으로 어린 나이였지만 당시엔 대한민국을 다 짊어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스포츠가 국민에게 희망과 힘을 준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내가 잘못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국가대표 선수는 경기를 뛸 때 혼자만 뛰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과 함께 뛰는 셈”이라며 “태극마크의 의미를 평창 동계올림픽에 나서는 후배들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동계 종목 중 스키를 가장 좋아한다는 현 감독은 “동계 종목 후배인 (전)이경이와는 봉사활동 등을 함께하면서 가까운 사이”라고 인연을 드러냈다. 천재는 1994 릴레함메르·1998 나가노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동계 종목 천재(전이경)를 금방 알아본 듯하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현 감독이 관심 가지고 보는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의 김민선이다. 현 감독은 “올해 19세인 김민선이 딸(17)과 나이가 비슷한 데다 내가 올림픽 무대에 나섰을 때 나이와 같아 각별하게 애정이 간다”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30년 전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선수인 셈이다. 김민선은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막내로 주목받고 있다. 종목으로는 영화 ‘국가대표’로 잘 알려진 스키점프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 4위라는 기적을 만들어내며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서울올림픽과 같은 종합 4위(금 8·은 4·동 8)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 감독은 30년 전의 기적을 후배들이 평창올림픽에서 재현해줄 것을 기대하고 확신한다. 국민의 성원을 업고 자신감을 갖는다면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본인이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용인=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