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산수화는 영조 때 선비화가 겸재 정선(1676∼1759)에 와서야 비로소 우리나라 산천의 모습, 조선 복식의 사람이 화폭에 담겼다. 이전까지는 중국에서 건너온 화보 속의 산과 강,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관념 산수가 지배했다. 양대 전란 후 명·청 교체에 따라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싹트며 우리 땅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정선은 금강산과 한양 등을 직접 돌아보고 관찰하며 중국 남종화를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이를 그려 진경산수를 창안한 것이다.
정선이 여러 화첩으로 남긴 진경산수가 무더기로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은 정선이 그려서 화첩으로 묶은 ‘해악전신첩’(보물 제1949호) 등 5건이 보물로 지정됐다고 26일 밝혔다. 해악전신첩(1747)은 71세 때 금강산 경치를 21폭에 담아낸 것이다. ‘풍악내산총람도’(제1951호)는 가을날 금강산의 절경을 표현했다. 서울 근교와 한강을 그린 ‘경교명승첩’(제1950호)과 자신을 후원했던 안동 김씨 가문의 김상용 고택을 그린 ‘청풍계도’(제1952호)도 보물로 지정이 됐다. 여산에 초가집을 짓고 은거한 백거이의 고사를 주제로 한 ‘여산초당도’(제1953호)도 포함됐다. 이 그림은 수묵을 즐겨 사용한 정선의 화법과 달리 짙은 채색화여서 희소성이 높다.
문화재청은 이밖에 ‘청자 음각환문병’(제1954호)과 ‘청자 양각도철문 정형향로’(제1955호) 등 15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정선의 진경산수화 ‘해악전신첩’ 등 보물 지정
입력 2017-12-26 19:31 수정 2017-12-26 2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