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청량리 대왕코너

입력 2017-12-26 18:32

서울에서 일어난 대형 참사에서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는 빠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불이 나 163명이 숨진 명동 대연각호텔 화재와 함께 1970년대 급작스러운 도시화가 빚은 대표적인 비극으로 꼽힌다. 대왕코너는 68년 청량리역 옆에 들어선 7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다. 사람들이 무작정 서울로 향하던 시절이었다. 가방 하나 들고 기차에서 내렸을 때 처음 만난 핫플레이스였던 것이다.

대왕코너는 대형 화재를 세 번이나 겪었다. 72년 8월 LPG통 폭발로 불이 나 6명이, 74년 11월 전기합선 화재로 88명이 숨졌다. 1년 뒤에 또 불이 나 희생자 3명이 나왔다. 잇따른 대형 참사로 대왕코너라는 이름 자체가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40여년 전 망령이 지금도 돌아다닌다. 72년 화재 원인을 조사할 때 5층 건물로 허가를 받고는 7층으로 불법 증축한 사실이 드러났다. 74년 화재 때는 7층 나이트클럽 회전문 때문에 희생이 컸다. 회전문은 한쪽 방향으로만 돌아야 드나들 수 있는데 급하게 탈출하던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가려다 갇혀버렸다. 전원이 끊긴 슬라이딩 도어에 막혀 탈출하지 못한 제천 화재 사건의 40년 전 버전이다.

소방당국의 점검은 형식적이었다. 화재탐지기는 설치됐으나 오작동을 이유로 멈춰 있었다. 소화기는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건물주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인화물질을 비상구에서 치우라는 명령을 무시했다. 대왕코너 사장과 관리담당자들은 화재 이후 줄줄이 구속됐다. 야당은 국회에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인허가 과정 비리와 부실한 소방점검을 파헤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왕코너 자리에 있던 건물은 지난 2월 철거가 시작돼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수년 안에 인근에 계획된 40∼50층 랜드마크 건물에 어울릴 최신식 백화점으로 다시 태어날 예정이다. 건물만 바꿀 게 아니다.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재난대응시스템도 다 부수고 새로 지었으면 좋겠다.

글=고승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