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차는 다 쓰셨나요?… 직장인 22.3%만 “연차 모두 소진”

입력 2017-12-25 18:54 수정 2017-12-25 23:19

회사 “수당 못 주니 다 써라”
직장인 “동료 업무 가중 등 눈치”
2003년 시행 사용촉진제도
현실선 휴가권장 요식 행위 그쳐
고용부 조차 소진율 50% 안팎


중견기업을 다니는 직장생활 7년차 A씨(36)가 올해 쓴 연차유급휴가는 12일이다. 법적으로 부여된 17일 중 70.6%를 사용했다. 그나마 입사 이후 올해 사용률이 가장 높다.

회사에선 연차수당을 줄 수 없으니 나머지도 다 쓰라고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연차를 쓰면 동료의 업무량이 그만큼 늘어난다. 차마 눈에 밟혀 모른 척하고 갈 수가 없다. A씨는 25일 “일도 많은데, 동료에게 미안해서 나머지 5일은 휴가를 못 갈 것 같다”고 했다. 연차 사용을 채근했기 때문에 회사는 연차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그는 “차라리 연차수당을 주면 휴가를 못 가더라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연차휴가 사용을 적극 권장한다. 대통령도 연차를 쓰면서 솔선수범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연차휴가는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근로자 767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올해 연차를 모두 쓴 근로자는 22.3%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은 연차를 다 못 쓴 것이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A씨 사례’는 늘어난다. 연차를 100% 사용한 직장인 비중은 중소기업(19.3%)이 중견기업·대기업(각각 26.4%)보다 적다. 아예 하루도 못 쓰는 이들도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설문조사에 응한 1000명 가운데 11.3%가 지난해 연차를 하루도 못 썼다고 답했다.

연차 사용률이 저조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역설적이게도 2003년부터 시행된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가 꼽힌다. 근로기준법 61조는 고용주가 근로자에게 연차 사용을 적극 권장하도록 규정한다. 휴가 계획서를 내지 않으면 고용주가 아예 휴가 계획을 세워 서면으로 통보하라고 못 박았다. 문제는 고용주의 ‘노력’에도 근로자가 연차를 가지 않았을 경우 별도 제재가 없다는 점이다. 고용주는 노력했기 때문에 연차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이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윤수 한국개발연구원 박사는 “제도의 불확실성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공무원이라고 다르지 않다. 근로기준법을 다루는 고용노동부 공무원조차 연차 사용률이 50% 안팎에 머문다. 장석춘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고용부 연차 사용 현황을 보면 지난해 566명에게 부여된 연차 1만2000일 중 사용한 연차는 5887일(49.0%)에 그쳤다. 한 사람에게 평균 21.2일을 부여했지만, 10.4일 정도만 쓴 셈이다. 연차를 모두 쓴 고용부 공무원은 2명뿐이었다. “휴식이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조차 올해 연차를 다 쓰지 못했다. 14일 가운데 7일만 사용했다.

그래도 공무원은 나은 편이다.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용부의 경우 지난해 564명에게 연차수당 5억8577만원을 지급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매년 ‘연차 다 안 쓰면 돈 안 준다’고 하지만 결국 다들 못 가고 돈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으로 부여한 연차 소진을 위한 특단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법으로 정한 연차는 최저 사용일수”라고 지적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휴가를 돈으로 보상하는 것을 지양하고, 휴가를 휴가로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