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부전자전… 아버지는 올림픽 메달, 아들은 성인 잡는 신동

입력 2017-12-25 19:14
오상은-오준성 부자가 지난해 12월 17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제70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복식 1회전 경기를 치르고 있다. 오준성은 지난 24일 열린 대회 남자 단식에서 성인 선수를 꺾고 사상 최초로 3회전에 오른 초등학생 선수가 됐다. 더핑퐁 제공

크리스마스 연휴에 초등학교 5학년생 탁구 선수가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에서 고등학생에 이어 실업팀의 성인 선수까지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꼬마 신동의 반란은 아쉽게도 32강에서 멈췄지만 탁구계는 “한국탁구의 미래가 나타났다”며 환호하고 있다.

제71회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대회가 열린 지난 23일 대구실내체육관. 오준성(11·부천 오정초)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 남자 단식 1회전에서 고교 1학년생 손석현(16·아산고)을 세트 스코어 3대 2로 제압하고 2회전에 올랐다. 오준성의 아버지는 탁구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네 번 출전해 두 차례 단체전 메달(2008 베이징 동, 2012 런던 은)을 거머쥔 오상은(40) 미래에셋대우 코치다.

오준성의 이변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튿날 오준성이 만난 2회전 상대는 실업팀 한국수자원공사 소속의 강지훈(20)이었다. 나이뿐만 아니라 신장과 체력 면에서 모두 열세인 오준성은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플레이로 경기에 몰두했다. 결과는 세트 스코어 3대 1 승리였다. 초등학생 선수가 탁구 대회에서 실업 선수를 꺾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준성은 이날 승리로 대회 사상 최초로 3회전에 진출한 초등학생이 됐다.

오준성의 겁 없는 도전은 크리스마스인 25일 같은 장소에서 펼쳐진 대회 3회전(32강전)에서 막을 내렸다. 오준성은 박정우(20·KGC인삼공사)를 상대로 4회전 진출을 노렸으나 세트 스코어 0대 3(3-11 5-11 8-11)으로 완패했다. 오준성은 성인 무대의 높은 벽을 실감하긴 했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탁구의 차세대 유망주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아버지 오 코치는 사실 아들에게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 운동선수로 성공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아서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오준성은 어릴 때부터 틈만 생기면 탁구공을 가지고 놀았고, 탁구 선수가 되길 희망했다.

결국 오 코치는 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오상은-오준성 부자는 지난해 같은 대회 남자 복식에 한 팀을 이뤄 출전하기도 했다. 오준성이 자유자재로 셰이크핸드그립(탁구 라켓을 악수하듯 쥔 채 양면을 모두 활용하는 타법)을 사용하는 것도 현역시절 아버지와 닮았다.

이번 대회 오준성의 경기를 직접 지켜본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은 “초등학교 5학년생이 성인에게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며 “오준성은 백핸드와 포핸드를 적절히 활용해 득점하는 선수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머릿속에 그린 작전을 구사할 줄 알고 경기운영 능력도 좋다”고 칭찬했다.

오준성이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을 키우고 좋은 환경에서 경험을 쌓는다면 그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할 전망이다. 현 감독은 “아직 어린 오준성이 힘을 기르면 자연스레 공의 움직임이 좋아질 것”이라며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