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제천 참사, 안전 시스템 새로 구축하는 계기 삼아야

입력 2017-12-25 17:45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가 전형적인 인재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건물 방재 관리에서부터 소방 점검까지 어느 한 곳 제대로 된 구석이 없었다. 안전불감증의 종합세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소방 당국도 25일부터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소방 관련 전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 철저한 조사로 안전 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합동조사단은 29명의 희생자 중 가장 많은 20명이 숨진 2층 여성 사우나 내부에 주목하고 있다. 소방청 등에 따르면 민간 안전업체 J사는 지난달 30일 하루 동안 스포츠센터 전 층을 돌며 안전점검을 했다. 사고가 나기 불과 3주 전이었다. 점검에는 J사 직원 3명이 참여했고 경보와 피난, 소화 등 5개 부문에서 30개 항목 67곳을 수리 대상으로 판정했다. 여탕이 있는 2층 사우나 내부를 제외한 모든 층에서 비슷했다. 소방 설비가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2층 내부에서는 별다른 지적 사항이 없었다.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탕이 영업 중이라 점검업체 직원이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비상구로 이어지는 공간에 불법 적치물이 쌓여 있었는데 이런 문제를 확인하지 못했다. 손님이 없는 시간대를 이용해 검사해야 했지만, 2층을 생략하고 점검이 이뤄진 것이다. 비상구만 둘러봤어도 인명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현행 소방시설관리법상 안전 점검은 매년 한 차례만 실시하면 된다. 건물주가 자격증을 소지한 직원을 통해 직접 점검해도 되고 민간업체를 선정해 대행해도 된다. 사실상 ‘셀프 점검’이다. 민간업체의 점검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안전이 비용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건물주와 협의한 뒤 적당히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싼 가격에 치중해 점검 과정이 부실할 때도 많다. 건물주와 업체가 제출한 이런 점검표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게 소방 점검의 현실인 셈이다. 소방차 진입로 확보도 고질적인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위급 상황 시 화재 진압에 방해되는 차량을 파괴할 수 있지만, 우리에겐 이런 권한이 없다.

이번 화재는 관련 규정을 대부분 지키지 않았거나 제도가 미비해 일어난 예고된 참사다. 평소 안전 시스템이 물샐틈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는 곳곳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을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고 관련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실상 셀프로 그치고 있는 소방 점검은 반드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국회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소방 관련 법안들의 신속한 처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이없는 인재로 되풀이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