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기독교 간의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통역 능력이 기독교 지성이 가진 본연의 역할입니다.”
한국기독학생회(IVF) 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장 이강일 목사는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한국기독학생회 중앙회관에서 열린 철학학교 ‘아볼로 스투디움’에서 기독교 지성의 정체성을 이렇게 정리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부터 2년째 아볼로 스투디움을 진행 중이다. 아볼로 스투디움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복음사역자 아볼로를 기독 지성의 모델로 삼아 운영 중인 철학학교다. 매년 2월과 8월 개강해 12주간 토요일마다 인문·사회·자연과학·철학 분야의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하고 있다.
지난 8월 시작된 이번 학기에는 미셸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과학과 종교 간 대화를 다룬 ‘종교전쟁’ 등의 서적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훈련을 진행했다.
수강생 중에서는 기독교인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현대사회의 지식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맨 경우가 많았다. 대학생 김재훈(24)씨는 “무신론자나 다른 종교를 믿는 친구들에게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를 쉽게 잘 설명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이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수강생들 역시 “기독교 서적만 읽으면서 정작 현대사회의 사상적 배경은 잘 모르고 있다는 답답함에 오게 됐다”고 전했다.
아볼로 스투디움의 가장 큰 특징은 해설서 없이 원전 읽기에 도전한다는 점이다. 전공자가 아니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 학기를 보낸 학생들은 “처음엔 두려웠는데 원전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주장이 단순명료했다”거나 “자기 수준에서 최대한 알아가자는 분위기라서 부담 없었다”고 밝혔다.
경건서적이 아닌 사회과학 등의 책을 읽으면서도 신앙에 도움을 얻고 있는 점도 장점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대학생 김모(22)씨는 “푸코의 책을 읽으며 권력이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며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 생기는 죄의 문제를 비기독교인의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아볼로 스투디움은 비기독교서적을 읽으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를 지키고 있다. 모임은 항상 큐티(QT) 나눔을 통한 성경묵상으로 시작된다. 날카롭게 서로를 비판하기보다는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수강생은 “모르면서도 이해한 척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안전한 곳”이라며 모임을 평가했다.
이 목사는 “종교개혁이 만인제사장설을 낳은 것처럼 이제 만인지식인운동이 필요하다”며 “기독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세속학문을 익히면서 교회와 세상 사이의 통역 능력을 갖춘 신앙인을 길러내는 게 아볼로 스투디움의 목표”라고 밝혔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현장] 철학하는 기독교 지성 길러냅니다
입력 2017-12-26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