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1987년은 서울 마포대교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으로 기억된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찬바람이 불던 어느 날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한 대통령 후보 유세장에 나갔다. 16년 만에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였기에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인파에 밀려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너게 됐는데, 당시 코끝을 스치던 차가운 공기와 “독재 타도”라는 외침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해는 1월부터 심상치 않았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서울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지면서 봄부터 대학가에는 시위가 이어졌다. 급기야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연세대 이한열군이 쓰러지자 학생들은 물론 직장인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6·10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진 뜨거운 시간들이었다.
27일 개봉하는 영화 ‘1987’은 한 대학생의 죽음이 6월 광장으로 이어지기까지 6개월을 담았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불의에 맞섰던 그 시간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영화는 어느 한 사람의 힘이 아니라 모두의 힘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세상에 알린 데는 많은 이들의 용기가 필요했다. 사실을 은폐하려는 권력에 맞서 직을 걸고 부검을 강행하게 한 검사, 의료인의 양심을 걸고 구타에 의한 사망이라고 부검 소견을 적은 의사, 역사에 묻혀버릴 수 있는 진실을 파헤쳐 보도한 기자, 위험을 감수하고 사건의 진실이 담긴 옥중서신을 밖으로 알린 교도관. 이들은 하나같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다”며 각자의 위치에서 신념을 건 선택을 한다. 그 순수하고도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됐다.
장준환 감독이 이 영화를 기획한 것은 박근혜정부 시절이다. 배우 문소리와 장 감독 부부는 지난 정권 나란히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이다. 엄혹한 시절이었으니 제작은 비밀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시사회 후 ‘관객과의 대화’ 행사에서 장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꼭 필요한 이야기인데 왜 안 만들어졌을까 하고 덤볐는데 다 이유가 있었단다. 투자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배우는 캐스팅이 될지 모든 게 막막한 상황이었다. 답답함 공포 분노가 함께 밀려왔다고 했다. 험난한 앞길이 예상됐지만 무조건 시작했다. 수천 장이 넘는 자료를 찾으면서 시나리오 작업을 마치고 캐스팅을 진행하던 중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천지개벽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역사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이 영화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1987년의 기억이 전혀 없는 세대도 그때를 떠올리는 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2017년으로 이어지는 지난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명예로운 시민혁명을 이뤄내지 않았던가. 1987년의 우리는 뜨거웠고, 2017년의 우리도 위대했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30년 전 서슬 퍼런 독재에서 그렇게 힘들게 성취해낸 민주주의가 지금도 휘청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예나 지금이나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서민들의 아파트값은 오르고 청년들은 취직이 안 된다. 세월호 참사라는 큰 사건을 겪으며 온 나라가 안전을 부르짖었건만 아직도 어이없는 사고로 소중한 목숨을 잃는 일이 잇따른다.
1987년이 2017년에게 말을 걸어온다. 30년 전 세상을 바꾼 힘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던 우리 모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를 바꿨으니 우리가 나라의 주인이고, 그러니 우리가 각자 맡은 영역에서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해내야 한다고. 그렇게 모여진 하루하루가 역사를 만들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여 좀 더 나은 나라가 될 것이다. 2018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픔이 있어도 삶은 계속된다. 각오를 다져본다. 다시 30년 후, 우리 아이들에게는 지금보다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하니까.
sjhan@kmib.co.kr 한승주 문화부장
[돋을새김-한승주] 1987년이 2017년에게
입력 2017-12-25 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