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등판 5시간 전 벽에 공 던지고, 같은 음식만 섭취…삶의 일부 메이저리거 ‘루틴’

입력 2017-12-25 19:12

지난 10월 29일(한국시간) 미국프로야구(MLB) LA 다저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월드시리즈 4차전이 끝난 휴스턴 미닛메이드파크. 5차전 다저스 선발로 예정된 클레이튼 커쇼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다 돌연 마운드로 향했다. 글러브도 없이 왼손에 공을 쥔 커쇼는 세트포지션 자세로 홈플레이트를 수초 응시하다 내려왔다. 취재진이 이유를 묻자 커쇼는 “피칭한 지 오래된 장소에 가면 매번 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커쇼의 루틴은 MLB에서 유명한 편이다. 그는 등판 5시간 전 벽에 공을 가볍게 던지고, 4시간 전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과 대화하고, 3시간 전엔 유니폼 하의와 스파이크를 착용한 채 트레이너를 찾는다. 35분 전부터는 외야에서 롱토스를 하는데, 빠른볼-체인지업-빠른볼-커브-빠른볼-슬라이더의 순서로 34구를 던진다. 롱토스를 마치고 포수와 덕아웃으로 걸어오는 시각은 초구를 던지기 8분 전이다.

MLB 600홈런을 달성한 강타자 알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도 오래도록 루틴을 깨지 않은 선수다. 그는 배팅 케이지에 들어가기 전 이미 본인만의 11가지 티 배팅을 마친다. 푸홀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빅리그에 올라온 2001년 이후 매일 반복하는 훈련”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거들의 루틴은 MLB 생활을 접고 LG 트윈스로 옮긴 김현수의 발언으로 최근 재조명됐다. 김현수는 “한국에 있을 때 나름 루틴을 정해놓고 살았지만, ‘그 정도 루틴은 루틴도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직접 식단을 챙기는 등 루틴이 생활화된 MLB 선수들은 슬럼프를 극복하는 시간도 빨랐다 한다.

규칙이 깨지면 불쾌해하는 선수들도 있다. 강속구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내셔널스)는 최근 “내년 올스타전 참석을 다시 생각해야 할 듯하다”고 밝혔다. 내년 올스타전은 그를 프랜차이즈 스타로 키운 워싱턴 홈구장에서 열린다. 그럼에도 일찌감치 이뤄진 불참 선언은 루틴을 벗어나는 부담감 때문이다. 지난 7월 올스타전 뒤 부상자명단(DL)에 오른 그는 “좋은 루틴을 유지했는데, 올스타전 참가를 요구받고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독한 루틴의 대명사는 스즈키 이치로(전 마이애미 말린스·사진)다. 그는 50세까지 뛰겠다는 일념으로 매년 훈련을 3∼4일만 걸렀고, 선수생활 내내 같은 음식만 먹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파에 앉아 쉬는 게 밖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리 부지런하게 경기를 준비하느냐”는 질문에 이치로는 “은퇴하면 죽는 날까지 쉴 수 있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