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스웨덴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국제적으로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지속적인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로 논문, 특허 등 양적인 연구 성과는 증가했으나,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와 성과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 R&D 투자가 2014년 약 18조원에서 이제 약 20조원 시대를 맞이하고 있으나, 논문의 질적인 수준을 나타내는 피인용 상위 1%의 논문 점유율은 세계 15위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반해 중국은 피인용 상위 1%의 논문 점유율이 지난 2004∼2014년 4위에서 최근 3위로 상승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연구기획, 단기적 성과관리 등으로는 혁신적 연구 성과에 한계가 있고, 연구자의 창의성이 충분하게 발현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가 창출될 수 있도록 연구현장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사람 중심으로 R&D 프로세스 전 과정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연구자 중심 R&D 프로세스 혁신’이 그 시작이다. 연구자가 창의와 자율성을 가지고 원하는 연구에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어야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해 올해 8월부터 3개월간 연구현장 연구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했으며, 이를 토대로 과제기획, 과제선정, 과제평가, 성과보상 등 R&D 사업 전 과정에 걸친 변화와 혁신을 유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다.
혁신방안의 핵심은 연구자의 자율과 책임이다. 연구현장에서 연구자들에게 주는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줄이고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정착시키는 것이 정책의 주요 내용이다.
정부는 그동안의 관리와 통제에서 벗어나 조력과 지원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사업 기획 시 다수가 참여하는 크라우드형 기획을 도입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과제제안서(RFP)는 지양하고, 연구목적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방침이다. 사업 기획을 너무 서둘러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 참여하고, 기획 의도조차 알 수 없었다는 현장의 소리를 반영한 결과다. 또한 연차평가는 연구보고서로 대체하고, 기초 연구는 성공과 실패의 판정을 폐지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평가 환경을 조성한다. 연구 목표를 조기 달성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우수성과 창출 시 후속연구를 확대하는 등 사업 관리의 유연성도 높인다.
아울러 과제 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은 더욱 높인다. 평가위원 명단과 종합의견은 원칙적으로 공개하고, 상피제 기준을 완화하는 등 최고의 전문 평가자 풀을 확보할 계획이다. 동시에 일탈 행위에 대한 규제는 강도를 높여 금품수수, 부정행위로 인한 처벌은 강화한다. 이번 혁신방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수행하는 기초와 원천, 정보통신기술(ICT) R&D 지원사업에 우선 적용되며, 이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 중 범부처 R&D 제도 혁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번 혁신방안은 단기 성과 중심의 추격형, 정부 주도형으로 추진해 온 기존 연구개발 지원 방식의 틀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연구개발의 모든 과정에서 연구자가 창의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풍토가 현장 연구자가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R&D 혁신의 과정은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는 것이 아니다. 현장과 눈높이를 맞추고 끊임없이 소통해 과학기술이 국가 혁신성장을 주도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정부의 연구자 중심 R&D 시스템으로의 혁신은 연구자들이 맡은 연구분야에서 세계적 연구공동체를 이끌어갈 만한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에 최선을 다할 때만이 완성될 수 있다.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인이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과학기술자의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
정병선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
[기고-정병선] 과학기술 부단히 혁신해야
입력 2017-12-25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