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 뮤지컬·김환기·페미니즘 소설 ‘강세’… 2017 대중문화 결산 (下)

입력 2017-12-25 05:01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베를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뒤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함께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뮤지컬 ‘레베카’와 ‘캣츠’ 포스터. 각 제작사 제공
65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경매가 최고를 경신한 김환기 작가의 ‘고요 5-Ⅳ-73 #310’. K옥션 제공
가수 조영남이 지난 10월 대작 사건의 선고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국민일보DB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가운데)가 지난달 13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위 사진). 일본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기사단장 죽이기’ 표지. 각 출판사 제공
이번 주에는 공연계 미술계 문학계를 살펴봅니다. 공연계는 올해 상반기 정치적 혼란으로 상당히 위축됐다가 하반기 회복되는 분위기였습니다. 클래식에서는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미술계는 김환기 화백의 강세가 재확인됐고 위작 논란 여진도 이어졌습니다. 문학에서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페미니즘이 강세였습니다.

▶공연계

캣츠, 한국 뮤지컬 사상 첫
누적 관객 200만명 돌파
전반적으로는 불황 지속
젊은 피아니스트들 맹활약


올해 상반기 공연계는 정치적 혼란으로 위축됐다. 관객들은 주말마다 극장보다 집회 현장을 찾았고 제작사도 작품 개막을 연기해야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문제가 한한령(限韓令)으로 이어져 클래식과 난타를 비롯한 한류 공연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다 하반기 들어 정국이 안정되면서 공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한 해 전반을 보면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불황이 계속됐다.

우선 뮤지컬에선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내한 공연과 라이선스 대작이 압도했다. 티켓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의 올해 뮤지컬 예매 순위(24일 기준)에 따르면 ‘레베카’가 판매점유율 5.7%로 1위를 기록했다. ‘시카고’와 ‘시스터 액트’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연극에선 ‘옥탑방고양이’가 6.6%로 1위를 차지했다. ‘오픈런’(폐막 시기를 정하지 않은 공연)이 강세였다.

‘캣츠’는 지난 16일 한국 뮤지컬 사상 최초로 누적 200만 관객을 돌파해 새 시대를 열었다. ‘명성황후’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10년만이었다. 인구 5000만명을 기준으로 25명 중 1명, 8가구당 1명이 캣츠를 관람한 셈이다. 캣츠는 전국에서 투어 공연을 벌이면서 지방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방 뮤지컬 시장을 확대한 성과도 있다.

이런 가운데 신선한 충격을 주는 창작 작품의 활약도 돋보였다. 뮤지컬에선 ‘영웅’과 ‘마타하리’가 흥행했다.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벤허’도 호평 받았다. 연극에선 서울시극단의 ‘옥상 밭 고추는 왜’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손님들’ 극단 신세계의 ‘파란나라’가 주목받았다.

클래식계에선 젊은 피아니스트의 활약이 돋보였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은 올해 미국 카네기홀 연주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모두 이뤄냈다. 선우예권은 지난 6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했다. 손정범은 독일 최고 권위 뮌헨 ARD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추모 공연이 국내외에서 열렸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윤이상을 기리는 추모 공연을 개최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9월 베를린 뮤직페스티벌에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초청돼 윤이상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윤이상의 고향 경남 통영에서도 추모 공연이 열렸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방송과 공연의 경계가 무너졌다. 올 초 종영한 JTBC ‘팬텀싱어’와 하반기 방송된 ‘팬텀싱어2’ 출신이 공연계에서 활약했다. KBS2 ‘발레교습소 백조클럽’으로 발레리나가 방송에 나왔다. 반대로 가수와 영화배우도 무대에 섰다. 배우 오지호와 발레리나 김주원이 연극 ‘라빠르트망’으로 데뷔했고 뮤지컬에 출사표를 던진 아이돌도 주목받았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미술계

김환기 작가의 ‘고요 5’
65억5000만원 ‘최고가’

위작 논란 마무리 모양새
代作 논란 조영남 ‘유죄’


김환기(1913∼1974) 화백의 강세가 다시 확인됐다. 지난 4월 K옥션 경매에서 김 화백의 ‘고요 5-Ⅳ-73 #310’이 65억5000만원에 낙찰되며 국내 작품의 경매 최고가 역사를 다시 썼다. 종전 최고가는 지난해 11월 말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김환기의 노란색 전면 점화가 기록한 63억2626만원(4150만 홍콩달러)이었다. 수개월 만에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최고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미술계의 후진적 관행과 부실한 감정 시스템을 보여주는 위작 논란은 어찌됐든 올해에 마무리되는 모양새였다. 천경자(1924∼2015) 화백이 그린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된 지 26년 만에 햇빛을 봤다. 위작 논란의 와중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4월 말부터 ‘소장품전: 균열’을 통해 전시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진짜”, 작가와 유족은 “가짜”라고 주장해온 이 사건은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이 ‘진품’이라고 결론을 내리며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이에 유족 측은 검찰 결론에 불복해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기각됐고, 법원에 낸 재정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단색화의 거장 이우환(81) 화백의 위작 논란 역시 결국 작가가 완패했다. 위작 유통 사건의 피해자인 이 화백은 경찰이 압수한 13점이 모두 자신의 진품이라고 주장했지만 2심에서도 모사품이라는 결론이 났다.

대작(代作) 논란을 촉발시킨 가수 조영남(72)에 대해서도 지난 10월 법원은 1년여 심리 끝에 사기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다. ‘화투 그림’으로 유명한 조씨는 화가 송모씨 등 조수에게 그리게 한 뒤 덧칠 작업만 한 작품 21점을 자신의 그림이라며 팔아 1억5300여만원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6월 불구속기소 됐었다. 재판부는 “판결이 미술계 및 예술계의 창작 활동과 거래 관행에 있어 합리적인 기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개념미술, 컴퓨터를 활용한 디지털 미술이 일반화되는 미술계 변화를 법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반론도 적지 않았다.

국내 최대 사립미술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 한 해이기도 했다. 리움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여파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예정했던 올해 기획전을 올스톱시켰다. 이 부회장의 어머니인 홍라희 관장도 사퇴해 리움에서 더 이상의 현대미술 후원 행보는 없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문화재 분야도 논란이 많았다. 문재인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가야사 연구와 유물 발굴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야사를 복원해 경남 김해를 역사문화도시로 조성한다는 구상에는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가야사 사업에 무분별하게 뛰어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경북 포항에서는 강진이 발생했으나 문화재 피해가 예상보다 적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경주를 비롯한 경북 지역의 피해도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문학계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무려 50만부나 팔려나가

일본소설 역대 최다 판매
SNS 통한 詩 공유 확산


올해는 페미니즘이 대세였다. 지난해 10월 출간된 조남주(39)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페미니즘 이슈의 불쏘시개가 됐다. 금태섭 국회의원이 동료 의원들에게 선물한 데 이어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큰 화제가 됐고 너도나도 사보게 됐다. 무려 50만부가 팔려나갔다.

이 책은 한국에서 태어난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차별을 기록해 큰 공감을 얻었다. 이 소설의 계보를 잇는 여성주의 소설 박민정의 ‘아내들의 학교’ 강화길의 ‘다른 사람’ 김숨의 ‘당신의 신’도 나와 주목받았다. 지난달엔 조남주가 다른 여성작가 6명과 함께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를 내 화제가 됐다.

주요 문학상에서도 젊은 여성 작가들이 강세를 보였다. 국내 3대 문학상 중 현대문학상과 동인문학상이 김성중(42)과 김애란(37)에게 돌아갔다. 김애란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김성중은 글쓰기를 통한 연대(連帶)를 탐구했다. 개인적 경험과 내면 풍경에 몰입했던 1990년대 여성작가 은희경 신경숙 등과 확실히 차별화된 면모다.

그럼에도 남다른 깊이가 있거나 대중성 강한 국내 장편소설은 좀체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국내 독자들은 외국 장편에 눈을 많이 돌렸던 것 같다. 교보문고가 얼마 전 일본소설 판매 수치를 분석한 결과 올해 처음으로 80만권을 넘어서며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독자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2012) 무라카미 하루키가 7년만에 선보인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 애니메이션 동명 원작 소설 ‘너의 이름은.’ 순서로 일본 소설을 많이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한국 장편소설이 아쉬운 대목이다.

시를 SNS로 공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시요일’ 이용자가 출시 7개월만에 1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매일 한 편의 시를 새로 소개하는 시요일은 시구 공유 기능이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린 것으로 보인다. 또 신철규(37)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등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시집이 각광받았다.

현역 최고령 소설가 최일남(85)이 소설집 ‘국화 밑에서’를 내고 ‘칼의 노래’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69)이 ‘공터에서’란 신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많은 작가들이 세상을 떠난 해였다. 시인 황금찬 김종길, 소설가 박상륭 정미경 등이 세상을 떠났다. ‘즐거운 사라’로 유명한 국문학자 마광수도 세상을 등졌다.

황석영 이시영 등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문인들이 피해를 고발했다. 친일문학상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서울 용산구에 국립한국문학관을 건립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의 의견 대립이 노출됐다. 조정래가족문학관 등 지자체의 문학관 유치 경쟁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