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도 짝도 바꿨다, 평창 金 위해

입력 2017-12-25 05:05
알리오나 사브첸코(왼쪽)와 브루노 마소가 지난 9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페어 프리스케이팅에서 리프트(남자가 여자 파트너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기술)를 선보이고 있다. AP뉴시스

피겨 스케이팅 페어의 ‘레전드’ 알리오나 사브첸코(33)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선 금메달의 한을 풀 수 있을까.

사브첸코와 파트너 브루노 마소(28)는 지난 9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2017-2018 국제빙상연맹(ISU)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페어에 출전했다. 이날 사브첸코-마소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음악 ‘라 떼르 뷔 듀 시엘(La terre vue du ciel·하늘에서 바라본 대지)’에 맞춰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했다. 똑같은 안무와 점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여줬다. 마소가 사브첸코를 번쩍 들어 올린 후 한 팔로 지지하면서 회전을 이어가자 관중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아름답게 은반을 수놓은 사브첸코-마소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브첸코가 그랑프리 파이널 페어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이번이 5번째였다.

사브첸코는 24일(한국시간) ISU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인터뷰에서 “기립 박수를 보내준 팬들 덕분에 동기부여가 됐고 힘을 낼 수 있었다”며 “파트너인 마소와 새로운 시도들을 하며 더욱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브첸코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 통산 5번이나 정상에 오른 실력파다. 유소년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최정상에 서 있던 사브첸코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다. 앞선 4번의 동계올림픽출전에서 동메달 2개가 최고 성적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30대 중반에 접어든 사브첸코에게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전망이다.

장기간 최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브첸코는 자신의 파트너는 물론 국적까지도 바꿔 왔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그는 다섯 살 때 TV에 나오는 피겨 스케이팅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피겨 스케이팅을 타러가기도 했다. 열세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페어를 시작한 사브첸코는 1999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와 2000년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으로 일약 신데렐라가 됐다. 당시 파트너였던 스타니슬라브 모로조프(38)와는 2002 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에도 함께 나서 15위에 올랐다.

이후 사브첸코는 2003년부터 독일 국적의 로빈 졸코비(38)와 한 조를 이뤘다. 2005년 말엔 국적도 독일로 바꿨다. 2006 토리노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서였다. 올림픽에 함께 출전하기 위해서는 남녀 선수의 국적이 동일해야 한다. 토리노에서 6위를 차지한 사브첸코-졸코비는 5번의 세계선수권대회(2007-2008·2008-2009·2010-2011·2011-2012·2013-2014 시즌) 우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올림픽에선 불운이 이어졌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과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선 빙판에 넘어지는 등 제 기량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 2회 연속 동메달에 그쳤다.

졸코비가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자 사브첸코는 프랑스 출신인 마소와 새로운 조를 구성했다. 마소는 독일 대표로 나서기로 결정했다. ISU 규정상 이를 위해서는 프랑스피겨협회의 승인이 필요했다. 프랑스피겨협회 측에서 7만 유로(약 9000만원)에 달하는 이적료를 요구하면서 약 1년 동안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프랑스피겨협회는 조건 없이 마소를 풀어줬고, 마소는 지난달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2015년 11월부터 본격 국제대회에 나선 세브첸코와 마소는 세계선수권과 유럽선수권 등에서 메달권에 진입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지난 9일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금메달의 기쁨을 누렸고, 이젠 평창동계올림픽 무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