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 서울대 교수 “유인원이 직립보행 시도하듯 완전히 바꿔야”
대검, 청렴아카데미 5회째
“비리예방·청렴문화 확산
인문학서 해법 찾고있다”
“혁신은 무섭습니다. 네 발 대신 두 발로 걷는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죠.”
지난 22일 오전 대검찰청 대회의실. 강단에 선 배철현(55)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가 혁신이란 단어를 꺼내자 문무일 검찰총장을 포함한 대검 직원 100여명의 숨소리가 일순간 잦아들었다. 배 교수는 대검 감찰본부(본부장 정병하)가 기획한 청렴아카데미의 다섯 번째 강연자로 이곳을 찾았다. 배 교수는 “짐승이 자신의 가죽을 보호해주는 털을 모두 깎는 것을 혁신(革新)이라고 한다”며 “유인원이 네 발로 걷기를 포기하고 직립 보행을 시도하는 것처럼 검찰도 완전히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감찰본부는 지난 3월부터 인문학자들을 강사로 초빙, 검찰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강연 행사를 열고 있다. 인문학자 고미숙씨를 시작으로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와 조동성 인천대 총장,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등이 차례로 강단에 섰다.
성서 등 고전문헌을 연구하는 학자로 인류의 근원을 성찰하는 저서로 유명한 배 교수는 “검찰 청사에 들어오면서 왠지 마음이 무거웠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질서 정의 사랑 같은 가치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무시하지만 결국 사회를 하나로 묶는 것들”이라며 “여러분(검찰)은 바로 이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조언했다.
인문학 강좌를 연 감찰본부는 조직을 감찰하고 징계하는 곳이다. 감찰본부 관계자는 “예방 감찰의 중요성 때문”에 인문학 강좌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경고성 메시지를 주는 기존 방식으로는 비위를 예방하고 청렴 문화를 확산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로 불리는 인문학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인문학자들은 수백명의 검사 앞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지적을 쏟아냈다. 지난 11월 강사로 나온 박훈 교수는 일본 근대화를 이끈 메이지 유신을 예로 들며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교수는 “일본 사무라이들은 냉정한 현실 인식으로 쇄국 대신 개국을 택했고 격변의 시기에도 청렴성을 유지했다”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계급이 없어지기도 했지만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고 이들도 새로운 관료 계급으로 재탄생했다”고 했다. 특수통 검사를 칼잡이로 칭하는 검찰 문화를 사무라이와 비유해 개혁과 청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감찰본부 관계자는 “올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19개 중앙행정기관 중 검찰이 8위를 기록했지만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며 “내부 분위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구성원들 스스로 청렴 의식을 고양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글·사진=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검찰총장 등 검사들 면전에서 쓴소리 쏟아낸 교수들
입력 2017-12-2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