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리뷰-국립현대미술관 ‘신여성 도착하다’] ‘그렇고 그런’ 신여성 풍속도

입력 2017-12-25 05:03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신여성 도착하다’ 중 잡지 코너. 근대기 잡지는 대중을 교육하고 계몽하는 미디어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20년대 개벽사가 발행한 여성잡지 ‘신여성’은 ‘교육을 받아 계몽된 새로운 여성’을 일컫는 말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 문화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페미니즘 이슈를 말한다.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신여성 도착하다’가 그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강승완 학예실장은 24일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는 그동안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루어졌지만 이번 전시에선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자료를 모으는 역량에선 역시 국립현대미술관의 힘이 느껴진다. ‘별건곤’ 같은 근대기 여성잡지, 딱지본 소설 등 그동안 보지 못했던 표지 이미지가 대거 나왔다. 김은호의 ‘미인승무도’(1922), 운보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의 ‘예술해부괘도 전신골격’은 국내 처음 공개다. 풍부하게 나온 동양화 유화 작품, 영화 대중가요 등 다른 시청각 매체도 동원해 전시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큐레이션’에 있어 과감함이 부족했다. 취지에선 분명 ‘신여성의 이미지를 여성의 관점에서 다루겠다’고 했지만 선언에 그쳤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의 들머리. 경성의 백화점 옥상에 앉아 정면으로 한껏 드러낸 신여성의 사진과 양산을 쓰고 가는 작은 뒷모습으로 신여성을 묘사한 회화를 대비시켜 취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어지는 전시 구성에서는 아카이브 책자와 유화 등 작품 재료별로 칸막이를 치다보니 신여성을 대상화해 바라보는 남성과 스스로의 삶의 문제로 바라보는 여성의 다른 시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시각적 충돌, 그 충돌이 야기하는 긴장은 전시장에 존재하지 않았다.

여성잡지 표지만 해도 그렇다. 허리를 S자로 한껏 구부리고 춤을 추는 욕망의 신여성이 있는가 하면, 아이를 업고 피로에 절어 있는 고달픈 엄마의 얼굴도 있다. 상반된 이미지들이 한데 섞여 나열되는 바람에 선명함을 잃었다.

유화에서도 여성작가 나상윤이 그린 여성 누드는 얼마나 강렬한가. 배의 주름이 한껏 늘어진, 초상화 속 여성의 꾹 다문 입에선 도발의 기운이 풍긴다. 이는 이쾌대 오지호 이인성 등 당대 최고의 남성 작가들이 그린 아내의 초상화가 다소곳하거나 사랑스러운 여인으로 이미지화된 것과 대조를 보인다. 그럼에도 같은 벽면에 같은 무게를 갖고 섞여서 진열되었을 뿐이다. 교육과 계몽, 현모양처와 기생, 연애와 결혼, 성과 사랑, 소비문화 등 다양한 주제가 제시됐지만, 해석이 없다보니 그렇고 그런 신여성 풍속도 전시가 됐다. 내년 4월 l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