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 앞에 인구 13만6000명의 중소도시 충북 제천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장례식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늘 함께할 것 같았던 친구, 정겨운 이웃을 졸지에 잃은 황망함에 모두 넋을 잃고 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대형화재 때마다 원인으로 지적된 문제점이 어김없이 재연됐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년8개월이 지났는데도 우리 사회의 무사안일 병폐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이번 화재는 1층 주차장에서 불이 시작돼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졌다.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의 판박이다. 건물 하단부에 외벽을 없애고 기둥만 세워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구조가 지닌 맹점이다. 값은 싸지만, 불이 나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유독 가스를 내뿜는 ‘드라이비트’ 공법의 위험성 역시 의정부 화재 때는 물론 2014년 고양 터미널 화재 때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빼곡히 주차된 차들로 소방차 진입이 가로막히고, 복잡한 건물 구조로 인해 인명 피해를 키우는 등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점이 이번 참사에서도 나타났다. 비상구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나뿐인 비상구는 2m 넘는 거대한 수납장에 가려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고 그마저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다며 늘 잠겨 있었다. 2층에서 가장 많은 20명의 희생자가 나온 결정적인 이유다. 비상구가 닫혀 있어 소중한 목숨을 잃은 것도 처음은 아니다. 언제나 지적됐고 지속적으로 단속과 점검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던 부분이다. 새롭게 드러난 스포츠센터 8, 9층 테라스 불법 증축과 작동되지 않았던 스프링클러도 낯선 레퍼토리가 아니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너도나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외친다. 이번에도 사고 현장에는 대통령과 국무총리는 물론 장관, 정치인들이 대거 달려갔다. 그리고 희생이 헛되지 않게 세밀하게 점검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넘쳐난다. 정말 말로 그쳐서는 안 된다. 안전은 좀 더 비싸고,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라고 인식할 줄 아는 사회가 돼야 한다. 기본에 충실해 곳곳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을 뿌리 뽑아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시스템을 송두리째 뜯어고치는 일은 그 다음이다. 안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사설] 안전한 사회는 결코 공짜로 이뤄질 수 없다
입력 2017-12-24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