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지정학의 망령이 또다시 유라시아 동단과 남단의 연안지대(림랜드)를 배회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지난 18일 신(新)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를 발표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 시도, 그리고 북한·이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등이 지역의 세력균형을 불안정하게 하고 미국의 국익을 위협하고 있으므로 압도적인 군사력과 동맹국·우방국과의 공조를 통해 저지하겠다는 취지다.
일본 언론의 평가는 크게 엇갈린다. 진보계의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은 시대착오적 독선이며 부시 행정부의 단독 행동주의의 새 버전이라고 혹평한다. 군사력에 의존하는 평화, 경제적 손실 집착, 세계질서보다는 미국 영향력 중시, 핵무기 폐기 및 지구온난화 대책 누락, 다자간 무역 틀 경시, 군비 확대와 지향적인 동맹국 관계 등. 한편 보수계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 등은 무역-안보 연계를 우려하면서도 힘에 의한 평화를 환영한다. 특히 미·일의 인도·태평양에서의 이익 공유, 중·러 수정주의 세력 규정, 북한·이란 불량국가 언급, 힘의 공백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자세를 높이 평가한다.
일전에 한·중·일 정치 지도자들이 21세기 상황에 19, 20세기의 지정학적 상상력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국민일보 5월 15일자). 그중에서도 아베 정권은 마한, 매킨더, 스파이크만 등 전통적 영미계 해양 지정학적 발상에 근거해 대중 억지(서태평양·인도양 제해권)를 사활적 국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 아베 정권으로선 트럼프 정부의 새 국가전략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선 트럼프의 신전략은 미·일 양국의 지정학적 정체성 공유를 확인시켜 주었다. 아베 정권은 국제사회를 대륙·권위주의 세력과 해양·민주주의 세력으로 나눈다. 신전략도 중·러를 압제(repressive) 국가로 간주하면서 이들의 세력권 확대 저지를 꾀한다. 트럼프 정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을 하나의 범주로 설정하고 동맹국·우방국과의 연계를 강조한 점도 아베 정권이 추진해 온 ‘안전보장 다이아몬드 구상’(미국-일본-인도-호주)과 흡사하다. 해양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를 축으로 한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과 같은 림랜드 국가를 포섭하는 방식이다.
미·일 간 중국 위협 인식이 접근한 점은 무엇보다도 반가운 부분일 것이다. 신전략은 일대일로, 무역 정책, 남중국해, 반접근지역거부전략(A2AD) 등을 들면서 중국을 수정주의 국가로 적시했다. 아베 정권은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중국에 미온적이었다고 불만이었다. 단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언급이 빠진 점은 유감일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신전략 발표에 대한 국내 언론의 주된 관심은 문재인 정부의 대중 ‘3불(不) 원칙’이나 한반도 전쟁불가론 등과의 충돌 여부에 쏠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마치 1세기 전의 해군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미·일의 전략적 사고다. 이는 해양국가 간 분열이 대륙국가에 최대의 득이 된다고 본다. 과거 미·일 간 전쟁은 소련의 세력권 확대에 기여했다. 중국의 세력권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선 미·일 결속이 핵심이다. 해양국가의 최대 위협은 대륙국가의 영향력이 유라시아 림랜드로 확대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륙국가의 림램드에 대한 영향력 확대, 림랜드에서 반미·반일 국가의 등장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해진다.
또한 북미대륙-태평양-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장대한 종심(縱深)을 갖는 미국 중심의 동맹체제는 미·일의 안보는 물론 지역 안정에 불가결하다고 본다. 림랜드 국가들과 동맹을 유지하면서 림랜드 국가 간 결속을 저지하며 가능하면 이들을 통해 대륙국가를 견제하거나 이들 간 상호견제를 통해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이나 동북아 균형자론, 미중일 정삼각형론 등은 림랜드의 세력균형을 뒤흔드는 행위로 해석된다. 중·러의 합종책에 대항해 미·일이 연횡책을 강구한다기보다 후자가 전자를 강요하는 형세다.
서승원(고려대 교수·글로벌일본연구원장)
[한반도포커스-서승원] 미·일의 해양 지정학적 사고
입력 2017-12-24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