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공연계는 정치적 혼란으로 위축됐다. 관객들은 주말마다 극장보다 집회 현장을 찾았고 제작사도 작품 개막을 연기해야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문제가 한한령(限韓令)으로 이어져 클래식과 난타를 비롯한 한류 공연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다 하반기 들어 정국이 안정되면서 공연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한 해 전반을 보면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진 불황이 계속됐다.
우선 뮤지컬에선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내한 공연과 라이선스 대작이 압도했다. 티켓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의 올해 뮤지컬 예매 순위(24일 기준)에 따르면 ‘레베카’가 판매점유율 5.7%로 1위를 기록했다. ‘시카고’와 ‘시스터 액트’도 상위권을 차지했다. 연극에선 ‘옥탑방고양이’가 6.6%로 1위를 차지했다. ‘오픈런’(폐막 시기를 정하지 않은 공연)이 강세였다.
‘캣츠’는 지난 16일 한국 뮤지컬 사상 최초로 누적 200만 관객을 돌파해 새 시대를 열었다. ‘명성황후’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고 10년만이었다. 인구 5000만명을 기준으로 25명 중 1명, 8가구당 1명이 캣츠를 관람한 셈이다. 캣츠는 전국에서 투어 공연을 벌이면서 지방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방 뮤지컬 시장을 확대한 성과도 있다.
이런 가운데 신선한 충격을 주는 창작 작품의 활약도 돋보였다. 뮤지컬에선 ‘영웅’과 ‘마타하리’가 흥행했다. ‘어쩌면 해피엔딩’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벤허’도 호평 받았다. 연극에선 서울시극단의 ‘옥상 밭 고추는 왜’ 프로젝트 내친김에의 ‘손님들’ 극단 신세계의 ‘파란나라’가 주목받았다.
클래식계에선 젊은 피아니스트의 활약이 돋보였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은 올해 미국 카네기홀 연주와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모두 이뤄냈다. 선우예권은 지난 6월 미국 텍사스에서 열린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했다. 손정범은 독일 최고 권위 뮌헨 ARD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1917∼1995)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추모 공연이 국내외에서 열렸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윤이상을 기리는 추모 공연을 개최했다.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9월 베를린 뮤직페스티벌에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초청돼 윤이상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윤이상의 고향 경남 통영에서도 추모 공연이 열렸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방송과 공연의 경계가 무너졌다. 올 초 종영한 JTBC ‘팬텀싱어’와 하반기 방송된 ‘팬텀싱어2’ 출신이 공연계에서 활약했다. KBS2 ‘발레교습소 백조클럽’으로 발레리나가 방송에 나왔다. 반대로 가수와 영화배우도 무대에 섰다. 배우 오지호와 발레리나 김주원이 연극 ‘라빠르트망’으로 데뷔했고 뮤지컬에 출사표를 던진 아이돌도 주목받았다.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2017 공연 결산] 상반기 위축, 하반기 활짝… 방송과 경계 붕괴
입력 2017-12-24 19:39 수정 2017-12-24 2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