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李 ,금품 수수 혐의 강력 부인
檢, 측근 진술 등 간접 증거 제출
뇌물 오갔다는 직접 증거론 부족
2심 “成 진술 없어 증거능력 부여 못해
배신·분노 감정 순수성 인정 어려워”
大法 “원심의 결론 수긍할 수 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겠습니다.”
2015년 4월 13일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장을 맡았던 문무일 현 검찰총장은 당시 첫 기자간담회에서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나흘 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돌연 목숨을 끊으며 남긴 55자 메모와 언론 인터뷰로 촉발된 수사였다.
성 전 회장의 메모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당시 경남도지사) 대표 등 정치인 8명의 이름이 담겨 있었다. 당시 여권 실세들을 무더기로 수사하게 된 특별수사팀은 “일체의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수사 착수 81일 만에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홍 대표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만 재판에 넘기면서 ‘봐주기 수사’라는 역풍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2년8개월이 흐른 22일 대법원은 홍 대표와 이 전 총리의 무죄를 확정했다. 범죄를 인정하기 위해선 증거가 필요하고 그 증거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력을 갖춰야 한다는 형사소송법 307조(증거재판주의)가 핵심 근거였다.
쟁점은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인터뷰를 유죄의 증거로 채택할 수 있는지였다. 홍 대표와 이 전 총리는 법정에서 금품 수수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의 유품 외에 성 전 회장 측근의 진술, 차량 이동 경로 등도 증거로 제출했지만 이는 뇌물이 오갔다는 직접 증거로 인정되기엔 부족했다. 뇌물 공여자인 성 전 회장의 법정 진술도 필요했지만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1, 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인터뷰를 ‘특신상태’(특별히 신뢰할 수 있는 상태)로 인정해 유죄의 증거로 삼았다. 홍 대표는 “노상강도를 당한 기분”이라며 반발했다. “나중에 저승에 가서 성완종에게 물어보는 방법밖에 없다. 왜 나한테 덮어씌우는지 모르겠다”는 말도 했다.
1심 판단은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2심은 성 전 회장의 메모와 인터뷰 등을 모두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성 전 회장의 법정 진술이 이뤄지지 않아 메모 등에 증거 능력을 부여할 수 없고 성 전 회장이 홍 대표 등에게 강한 배신감과 분노를 느끼던 상황이라 내용의 순수성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2심은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혹은 축소하거나 은폐했고 피고인들에 대한 비난은 강하게 표출했다”며 “뇌물수수 혐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도 “원심 결론을 수긍할 수 있다”며 이 판단을 받아들였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실체 없음으로 끝난 ‘망자의 55자 메모’… ‘成 리스트’는 왜 유죄 증거가 되지 못했나
입력 2017-12-2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