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총수 일가 선고] “배임 아닌 경영상 판단”… 한숨 돌린 신동빈

입력 2017-12-22 19:15 수정 2017-12-22 23:16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무죄를 선고받은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서미경씨(왼쪽부터)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1심 판결 내용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이
비리의 정점인 것으로 판단

롯데피에스넷 배임 관련
辛회장 혐의 모두 무죄로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 양도
서미경 등에 공짜 급여만 유죄

롯데그룹의 경영비리 사건을 14개월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범죄의 정점이 95세의 그룹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인 것으로 판단했다. 신동빈 회장을 중심에 둔 검찰의 공소사실이 사실상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2015년까지 부친이 경영 의사결정을 총괄했다”는 신 회장의 방어 논리가 통했다는 의미다.

계열사 부당지원 및 지분 고가 매입 등 배임 혐의도 대부분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검찰은 롯데그룹에 대해 4개월 이상 전방위 수사를 하고도 핵심 혐의 입증에 실패했거나 무리해서 기소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신 회장은 이제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국정농단 1심 재판 결과라는 큰 산만 남겨두고 있다.

당초 검찰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신 회장이 범행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 회장이 가담한 사실을 제한적으로 인정했다. 사실상 신 총괄회장이 범행의 전 과정을 장악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가 총수 일가 혐의 중 유죄로 인정한 건 딱 두 가지다. 롯데쇼핑의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권을 서미경씨와 그의 딸 신유미씨,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몰아준 혐의와 서씨 모녀에게 공짜 급여를 지급한 혐의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이 사실혼 배우자인 서씨 등을 경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봤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은 대기업 총수로서 계열사 자산을 개인 자산처럼 다뤘다”며 “그룹 정책본부 등을 가족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사용했다”고 질타했다. 신 회장은 이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중단시키지 않은 공모관계가 인정됐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대기업 오너의 경영상 판단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다면 배임이나 횡령의 죄책을 묻기 어렵다는 판단도 내놨다. 재판부는 신 회장의 롯데피에스넷 관련 배임 혐의를 전부 무죄라고 봤다. 신 회장은 2009∼2012년 롯데피에스넷의 ATM 사업을 확장하면서 계열사를 끼워넣어 부당 지원하고, 부실화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다른 계열사 자금을 동원하는 등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기업 경영에는 언제나 위험이 내재돼 있어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도 기업에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이에 대해 형사상 책임을 묻는다면 기업 활동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결정 등이 합리적 경영상 판단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이날 재판부가 약 1시간30분간 선고문을 읽는 동안 신 총괄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법정 밖에서 휴식을 취했다. 재판부는 선고를 내리기 직전 신 총괄회장에게 법정에 들어오도록 했다. 신 총괄회장은 자신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실을 아는지 괴성을 내며 불편함을 호소했다. 이날 실형을 면한 신 회장은 피고인석에 서서 밝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의 아버지가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사실을 인식한 듯 굳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섰다. 신 회장은 취재진이 판결에 대한 심경을 묻자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만 짧게 남겼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