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 참사] 총체적 인재(人災)… 이대론 제2, 제3 참사 못 막는다

입력 2017-12-22 19:04 수정 2017-12-25 14:12
전날 화재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의 노블 휘트니스 스파 건물에서 22일 현장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유리창 곳곳이 깨진 채 건물 전체가 시커멓게 그을린 모습이 참혹했던 화재 당시를 짐작케 한다. 제천=이병주 기자

사망 29명·부상 36명 집계

공사 부주의·가연성 마감재
잠긴 문·먹통 스프링클러…
참사 막을 장치 하나도 작동안해

초반 구조작업도 우왕좌왕

행안부 장관 “수사할 것은 수사”
文 대통령, 유족들 찾아 위로


1층 주차장 천장 공사를 안전하고 꼼꼼하게 했더라면, 2층 사우나의 출입문 버튼이 쉽게 열렸다면, 모든 층에서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외벽 마감재가 불연성 소재였다면, 인근에 불법 주차된 차량이 없어 손쉽게 소방차가 진입했다면….

5가지 중 한 가지만 이뤄졌다면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의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사고의 희생자는 줄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선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의 초기 대응이 적절했느냐는 성토도 이어졌다. 이번 사고가 총체적 인재(人災)인 이유다.

합동 현장감식팀은 22일 오전 제천시 하소동 화재현장의 1층 주차장 천장 쪽을 집중적으로 감식했다. CCTV에 주차장 천장에서 스파크가 발생하는 모습이 잡힌 것과 관련, 최초 발화지점을 찾기 위한 것이다. 소당 방국은 1층 주차장 천장의 배관 열선설치 작업을 발화의 원인으로 추정했다. 부주의한 공사가 참사의 화근이 됐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20명의 사망자가 발견된 2층 여성 사우나의 유리출입문 작동 여부도 논란이다. 버튼식인 이 출입문은 예전에도 잘 열리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이상민 제천소방서장은 “2층 방화문 안쪽에 유리로 된 슬라이딩 도어가 있는데, 안쪽에서 사망자들이 많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연기를 피하기 위해 나가려 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질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불길은 건물 전체를 삼킬 듯 넘실거렸으나 356개나 설치된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프링클러 미작동 이유는 화재 당시 1층 로비에 있는 스프링클러 설비의 알람밸브가 폐쇄돼 있었기 때문으로 파악됐다. 스프링클러는 알람밸브의 압력 변화에 따라 작동되는데 오작동 등을 우려해 일부러 폐쇄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

현행 건축법상에는 9층 건물인 노블 휘트니스 스파의 외벽 마감재는 불에 잘 타지 않는 자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은 개정 건축법이 시행되기 5개월 전 건축허가를 신청하면서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가연성 소재로 외벽을 마감했다. 불이 급격히 번진 원인이다.

굴절소방차가 구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고장이라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이일 충북도소방본부장은 “사고 현장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굴절소방차를 설치하는 데 시간이 지체됐다”고 해명했다. 더 빨리 사우나 유리창을 깨뜨렸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출동 당시 화염이 심해 사다리차로 접근하기 어려웠고 구조대원들이 건물 뒤에서 매달려 있던 사람을 먼저 구조하느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사우나 안에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며 필사의 몸부림을 하고 있을 때 밖에서는 물만 뿌리고 있었던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김 장관은 “조사할 것은 조사하고, 수사할 것은 수사하겠다”고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제천을 방문해 사고 관련 보고를 받은 뒤 화재 현장과 희생자 빈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추가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고 후속 대책에 만전을 기할 것을 지시했다. 청와대는 오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로 현안점검회의를 열고 국가위기관리센터 가동, 후속 대응 및 피해자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화재 당시 현장에서 나온 뒤 귀가했던 이들이 현장통제단에 자신의 부상 사실을 알리면서 이날까지 이번 참사로 인한 사망자는 29명, 부상자는 36명으로 집계됐다.

제천=홍성헌 허경구 손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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