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화재 참사] 목사 2명, 충주 목사 모임 참석 후 사우나 갔다 참변

입력 2017-12-22 18:22 수정 2017-12-23 14:18

안타까운 사연들

박한주·박재용 목사 사망에
“한평생 베풀기만 했던 사람” “헌금 아끼려 난방도 안 틀어”

형제처럼 한 교회 섬기다 숨진
두 목사 합동 장례식 치르기로

불우한 어린이들 성탄 선물
함께 준비한 권사 2명도

성탄절을 앞두고 불우한 어린이를 위해 선물(사진)을 함께 준비했던 두 권사, 한 교회에서 함께 목회를 했던 두 목사가 충북 제천 노블 휘트니스 스파 화재로 사망했다.

22일 오전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 전날 사망한 고(故) 박한주(62) 제천중앙성결교회 목사의 매형 김윤기(71)씨는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평생 베풀기만 한 사람”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목사가 숨진 현장에서 제천드림성결교회 박재용(42) 목사도 같이 숨진 채 발견됐다. 충주에서 열린 목사 모임에 참석한 뒤 함께 사우나를 찾았다 참변을 당했다. 두 목사는 같은 교회에서 담임과 부목사로 함께 일했던 사이였다. 3년 전 박재용 목사가 교회를 개척한 뒤에도 서로 도우며 지역사회를 섬겨 왔다.

연장자인 박한주 목사는 늘 베푸는 사람이었다. 매형 김씨는 “교회나 지역사회에 무슨 일이 생기면 (처남이) 제일 먼저 나섰다”며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제천중앙성결교회 권경상(64) 석시한(62) 장로는 “(박 목사가) 학비를 못 내는 신도를 위해 대신 돈을 내주기도 했다”며 “매년 바자회 행사로 얻은 수익은 지역 사회의 불우한 이웃들을 위해 썼다”고 했다.

드림성결교회 박재용 목사는 두 딸이 초등학교 1·3학년이다. 드림성결교회는 등록된 신도가 12가정인 미자립교회다. 박 목사는 헌금을 아껴 모아 지난달 교회를 조금 넓혀 이전했다. 사망 소식을 듣고 쓰러진 부인을 대신해 장례식장을 지킨 김모(44) 드림성결교회 집사는 “목사님은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다”며 “겨울에도 교인들이 낸 헌금을 아끼기 위해 난방도 안 틀었다. 3년간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김 집사는 “아이들이 성인도 안 됐는데 이제 어떡하죠”라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두 교회는 형제처럼 한 교회를 섬겼고 함께 숨진 두 목사의 장례식을 합동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항자(57·여) 김태현(57·여) 제천시온성감리교회 권사의 죽음도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3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이어온 두 동갑내기 친구는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반찬을 만들고 선물을 준비한 뒤 사우나를 들렀다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두 권사는 매주 목요일마다 교회를 찾아 제천 지역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위해 반찬을 만드는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정민(55) 시온성감리교회 목사는 “성탄절이 코앞이라 두 권사님께서 아이들을 위한 특별 선물도 준비하셨다”며 “아이들 줄 선물을 포장하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두 권사님의 마지막 사역”이라며 정성스레 포장된 선물을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제천서울병원 장례식장은 유족들의 눈물과 통곡으로 가득했다. 일부 유족들은 장례식장을 찾은 정부 관계자들에게 “여자들이 있던 2층 사우나 통유리만 먼저 깨줬으면 거의 다 살았을 것”이라며 “소방차도 왔는데 무엇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제천=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