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간당 1000원… ‘열정페이’에 기댄 평창 개회식

입력 2017-12-21 19:23 수정 2017-12-22 00:07

학생 218명 한 달 연습·공연… 10만∼20만원 주기로

무용 관련 학생 차출 의혹
행사 참여 동의서도 받아
담임·지도 교수가 요구 땐
문화계 관행상 거부 못해

조직위 “대행사가 진행
자원봉사 개념으로 알아”

한국무용학 전공 고교·대학생들이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고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공연에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참여한 학생들이 상당수였고, 한 달간의 단체연습과 개막식 행사에 대한 대가도 10만∼20만원에 불과해 ‘열정페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일보 취재 결과 성신여대, 경희대, 계원예고, 덕원예고, 선화예고, 국립전통예고 학생 218명(고교생 140명, 대학생 78명)이 개회식 공식행사 공연 준비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지난 17일 오후 2시부터 7시간가량 경기도 일산에서 첫 단체연습을 가졌다. 행사 준비팀은 개막식까지 합숙훈련 기간(19일간)을 포함해 30일가량의 연습 일정을 짰다. 21일 현재 올림픽까지 50일 남은 상황이어서 학생들은 사실상 겨울방학 기간 대부분을 행사 준비에 보내야 하는 셈이다. 연습 스케줄도 최근에야 확정됐고, 평일과 주말 모두 끼어있어 학생들 중 일부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나 보수는 턱없이 낮았다.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생 참가자는 “(선생님으로부터) ‘개회식이 끝나면 10만원 정도 줄 거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한 대학생 참가자는 “행사 비용으로 20만원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돈 관련 말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언급한 학생도 있었다. 경희대 한국무용학과를 졸업한 한 학생은 “요즘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하는 학생들이 돈을 적게 받는 문제로 내부에서 여러 말이 돌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의 연습시간과 공연시간을 계산하면 내년 시간당 최저임금(7530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문화예술계 내 만연한 불공정을 시정해야 한다”며 ‘열정페이’ 개선을 언급했다.

조직위 관계자는 “대행사가 각 학교와 협의해 진행한 사항”이라며 “자원봉사 개념으로 양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사전 조건과 일정을 설명했고, 희망자를 참여시켰다”며 “지급되는 돈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올림픽 참가에 의미를 둔 학생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직위는 학생들에게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 간식비, 의상, 연습용 롱패딩을 별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일보 취재 결과 한 고등학교의 경우 한국무용 관련 학생 전원이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했다. 한 학부모는 “선생님이 ‘무조건 필수’라며 한 명도 빠짐없이 연습을 시킨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다른 학교는 ‘(개회식) 준비과정 등 모든 행사에 적극적인 참여를 동의한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학생들에게 쓰게 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졸업 후 진로가 극히 제한적인 한국무용의 특성상 담임교사와 지도교수가 참여를 ‘요구’할 경우 학생들 입장에선 거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 관계자는 “배운다는 생각에 지도교수 공연에 적은 돈을 받고 참여하는 게 무용계 관행이었다”며 “그러나 국가적 행사에 동원되고도 이렇게 적은 돈을 받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법나무의 신용철 변호사는 “자원봉사가 아니라 원치 않게 이뤄진 계약이라면 위법 소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정동국제 최종화 변호사는 “담임교사나 교수가 학생들 대신 계약을 체결해 동원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