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열악해진 배달 노동자… 길거리 대기·편의점 식사

입력 2017-12-21 22:19

“가까운 곳에 배달가는 걸 잡으려고 ‘전투배차’를 하려면 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어요.”

2011년 피자배달 노동자가 주문 후 30분 이내 배달하려다 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외식업계 제한시간 배달제는 폐지됐다. 하지만 모바일 음식 배달 대행 서비스 등 O2O(온·오프라인연계)서비스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배달 노동자의 근로 조건은 오히려 더 열악해졌다. 수수료를 많이 받으려면 쉬는 시간에도 길거리에서 대기하며 경쟁적으로 ‘콜(배달 수요)’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1일 서울 종로구 본사에서 ‘서울지역 음식배달 종사자 노동실태조사’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배달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통하거나 외식업체가 운영하는 배달앱·전화 주문을 통해 배달하는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 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건당 배달 소요시간은 ‘20분 이내’라는 응답이 78.0%로 가장 많았다. ‘20∼30분 이내’라는 응답도 19.1%에 달했다. 사실상 모든 의뢰가 30분 이내 배달을 요구하는 셈이다. 하루 평균 배달 건수 30건을 채우려면 쉬지 않고 20분 이내 단거리 배달을 10시간 동안 해야 가능하다.

건별 수수료가 발생하다보니 장거리 배달보다는 단거리 배달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13명의 배달 노동자 심층면접을 진행한 김재민 서울노동권익센터 연구위원은 “배달이 20분 내로 고착화되면서 노동자들은 과속해서 과태료를 물면서도 목숨을 담보로 배달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배달 노동자들은 경쟁적으로 콜을 잡아야 하는 탓에 휴식장소도 마땅치 않다. 업체 휴게실에서 쉬다가 콜을 잡으면 배달 소요시간이 그만큼 길어지기 때문이다. 심층 면접에 참여한 A씨는 “길거리에서 쉬지도 못한다. 하루 종일 콜이 나오는데 아프거나 오래 콜을 받지 않으면 업체에서 콜을 잡지 못하게 불이익을 준다”고 말했다.

배달 중간 대기·휴식할 수 있는 장소를 묻는 질문에 ‘이면도로 등 주차가능 길거리’라고 답한 응답자가 37.1%에 달했고 ‘무료주차장 등 주차 공간’이라고 응답한 비율도 21.3%였다. 식사 역시 편의점 음식이나 김밥 등 간단한 음식(29.2%)으로 해결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대원 서울시 노동정책담당관 노사협력팀장은 “지자체 근로감독 권한이 없어 문제 접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이동노동자 쉼터 확대나 ‘노무-복지 연계 상담’등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