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 동결, 가장 큰 성탄 선물입니다

입력 2017-12-22 00:00
10년째 세입자 월세를 동결한 김형배 장로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장충동 사무실에서 ‘세입자서민을위한기독교인서명운동’에 참여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주거권기독연대 제공
주거권기독연대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회원들이 '성탄선물로 전·월세 동결 인하'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주거권기독연대 제공
서명운동에 동참한 성도들의 서명지 모음. 주거권기독연대 제공
서울에 보유한 상가 건물을 자영업자에게 임대한 이모(49)씨. 교회 집사인 그는 15년째 세입자로부터 받는 월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있다. 주변 시세보다 훨씬 낮은 금액이 된 지 오래다. 이 집사는 “나는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며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 공감하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역지사지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 말했다.

전월세 폭등으로 많은 서민이 고통에 시달리는 요즘, 이 집사 같은 사람은 세입자들에게 ‘착한 집주인’으로 꼽힐 만하다. 실제 이 집사는 현재 주거권기독연대(주기연·공동대표 박창수 목사)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사장 백종국)이 펼치고 있는 ‘세입자 서민을 위한 기독교인 서명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높은 전월세 비용으로 고통받고 있는 세입자 서민들을 위해 기독교인 건물주부터 전월세 안정화에 기여하자는 취지의 캠페인이다.

주기연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차례 총 66개 교회 성도 2806명으로부터 “월세를 3년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리지 않겠다”는 서명을 받았다. 지난 8월부터는 기윤실이 서명운동에 동참해 서명 교회를 늘려나가고 있다. 서명서에는 ‘세입자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한국교회가 고통받는 세입자 서민의 이웃이 돼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기를 소원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서명에 동참한 김형배(69·사랑누리교회) 장로도 착한 집주인에 이름을 올린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김 장로는 경기도 수원에 본인이 보유한 다가구주택에 세 들어 사는 13가구의 월세를 10년 가까이 동결 중이다. 세입자 형편에 따라 보증금 200만∼500만원, 월세 30만원에 세를 놓고 있는데, 월세는 10여년 전(34만원)보다 오히려 4만원 줄었다. 김 장로는 “세입자들 형편을 고려하다 보니 오히려 임대료를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많은 세입자들과 자영업자들이 월세 인상 요구에 떠밀리는 상황에서 이들 집주인이 동결을 결심한 이유가 뭘까. 김 장로와 이 집사 모두 “의식주 생활에 지장이 없고,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형편을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김 장로는 “월세를 올리지 않으니 세입자들이 월세도 꼬박꼬박 잘 내고 공실도 생기지 않으니 내게도 좋은 일”이라며 “좋은 집주인이라는 소문이 돌아 세입자 한 명이 나갈 때 다른 세입자를 바로 소개해주기도 했다”며 웃었다.

세상의 논리와 다른 ‘혜택’을 받는 수혜자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서울의 한 상가에 입주한 뒤 4년 동안 동결된 월세로 영업 중인 김모(57)씨는 “상가 주인이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 자영업자들을 생각해주시니 우리도 항상 그분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한다”며 “나도 이전에는 날카로운 면이 있었고 다른 이들과 돈 문제로 얽히면 마음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내려놓는 넉넉한 마음도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주기연 공동대표 박창수 목사는 21일 “전월세로 고통받는 서민을 줄이고자 운동을 시작했다”며 “이번 운동을 통해 세상이 교회를 다시 돌아보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윤실 자발적불편운동본부장 신동식(고양 빛과소금교회) 목사는 “전월세 동결 운동은 양극화 시대에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단비 같은 성탄 선물이 됨과 동시에 참된 기독교인의 복음 실천이 될 것”이라며 한국교회의 동참을 호소했다.

글·사진=이현우 기자 bas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