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크리스마스캐럴 그립습니다

입력 2017-12-23 00:00
한국교회 성도들이 1999년 12월 3일 해병대 서부전선 최전방 청룡부대 애기봉 성탄트리 점등식에 참가해 '우리의 소원'을 부르고 있다. 국민일보DB
서울의 한 유치원 아이들이 1998년 12월 18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고 있다. 국민일보DB
서울 상암동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2008년 12월 25일 한 성도의 집 앞에서 새벽송을 부르고 있다. 국민일보DB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지만, 이를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풍경은 시대에 따라 크게 변화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과 2017년의 분위기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페이스북 친구들의 기억을 통해 성탄절을 맞는 당시와 지금의 한국사회를 비교해봤다. 지난 11일 미션라이프 페이스북에 "30년 전, 그러니까 1987년의 크리스마스를 기억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현재의 크리스마스 풍경과 비교해 사연을 부탁드립니다"라고 알렸다. 그러자 하루 만에 40여개의 댓글이 이어졌다. 캐럴과 크리스마스카드 크리스마스실(Seal)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아이디 ‘박종력’님은 “당시 살았던 서울 가리봉에선 가게마다 캐럴이 울렸다. 성탄 분위기를 주도했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전도가 됐다”고 했다. “그 시절엔 성탄 특송 하나씩은 준비해야 하는 게 기본이었어요. 교회를 다니면 연극배역 하나씩 맡았었죠. 성탄카드도 나누고 그랬는데….”

1987년 겨울은 민주화운동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부풀어 오르던 때였다. 그해 10월 국회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가결했다. 그에 따라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경제적으로도 풍성한 해였다. 86년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해 열리는 88년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대하던 때였다. 그래서 성탄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다. 곳곳에서 캐럴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당시는 주로 카세트테이프를 통해 음악을 들었다. 대부분 불법 복제된 카세트테이프가 손수레에서 팔렸다. 12월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 손수레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온종일 캐럴이 울렸다. 그런 노점상이 곳곳에 있었다.

아이디 ‘Alex Min’님은 “레코드가게가 거리에 많았는데 그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캐럴만으로도 성탄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됐다”며 “특히 서울 종로에 카세트테이프 파는 노점이 많았다”고 기억했다. ‘송창규’님도 “학교 밖 레코드점은 물론이고 상점에서도 캐럴이 울렸고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였다”며 “그 많던 캐럴이 지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그땐 크리스마스 하면 카드와 크리스마스실을 떠올렸다. 평소 안부를 전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쉽지 않았던 이들, 또 장문의 글쓰기가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성탄카드는 쉽게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었다. 카드를 사기도 하고 만들기도 했다.

아이디 ‘김예숙’님은 “전에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으며 정성을 느꼈는데 요즘은 문자나 카카오톡으로 주고받다 보니 왠지 아쉽다”며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서 만든 카드와 선물은 마음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던 거 같다”고 회상했다. 이어 “최근 전도를 하기 위해 크리스마스카드를 사러 회사 근처 기독교 서점에 갔는데 카드가 없어 너무 놀랐다”며 “그 서점을 나와 세 번째 방문한 가게에서 겨우 샀다”고 덧붙였다. ‘김보언’님은 크리스마스카드가 많이 사라진 데 특히 아쉬워했다. “그때만 해도 성탄카드를 직접 만들고 인사를 써넣어 우편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런 카드를 받으면 정말 기쁘고 고마웠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인터넷에서 동영상 카드를 보내기도 하지만 그것과 달리 수기로 쓴 종이 크리스마스카드는 주는 사람, 받는 사람 모두를 설레게 했다”고 말했다.

카드에는 으레 우표와 함께 크리스마스실을 붙였다. 크리스마스실은 결핵퇴치기금 모금을 위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발행, 판매되는 봉인표였다. 19세기 말 덴마크에서 처음 발행됐고 한국에선 1932년 캐나다 기독교 선교사인 셔우드 홀(로제타 셔우드 홀의 아들)이 처음 만들었다. ‘조건영’님은 “학교에서 실을 팔아서 기쁜 마음으로 샀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산 적이 없는데 기회가 되면 올해 꼭 사고 싶다”고 말했다.

성탄절 하면 다양한 기부활동을 빼놓을 수 없다. ‘Shin Shin Baek’님은 “1987년엔 성도들이 거리에 나와 캐럴을 부르며 모금을 했는데 요즘은 구세군 빨간색 자선냄비만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구세군은 1928년부터 12월에 모금 활동을 펼친다. ‘송창규’님은 구세군의 자선냄비도 이전보다 찾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그는 “형형색색의 LED 램프만 있는 구조물이 소나무 모양의 트리를 대신하고 있다”며 “화려함만 있고 예수 탄생의 의미는 잊혀지고 이웃과 함께하려는 마음도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김연실’님은 “당시 사랑의 열매를 산 기억도 난다”고 했다. 사랑의 열매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이를 사는 만큼 금액이 기부됐다. 그는 “어려운 이웃들 도와준다고 매년 사랑의 열매를 사서 옷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요즘은 사랑의 열매 달고 다니는 사람을 못 보겠다”고 했다.

한 일간지는 1987년 12월 12일자에 ‘서부전선 애기봉, 크리스마스트리 점화식’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해군 해병청룡부대가 11일 오후 서부전선 최전방고지인 애기봉 정상에서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크리스마스트리 점화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김포 애기봉 성탄트리는 1954년부터 불을 밝혔다. 2004년부터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성탄트리에 불을 밝히지 않았지만 연평도 포격 이후인 2011년 다시 불을 켰다가 최근 트리용 철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만들고 있다.

또 그해 12월 22일자에는 ‘X마스 트리 점등’이란 사진 기사가 실렸다. “대통령 선거가 있기까지 고비 고비 시위 인파로 뒤덮였던 시청 앞 분수광장에 21일 대형 크리스마스 장식이 세워졌다. 예년에도 20일을 전후해 점등됐으나 올해는 선거를 치르느라 유난히 늦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만개의 오색 전등을 132가닥의 전선에 매달아 꾸민 장식은 내년 1월 5일까지 점등된다”고 설명을 달았다. 올해는 지난달 30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됐다.

크리스마스를 맞는 바람도 변함이 없다. ‘이미자’님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모든 영혼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 기뻤으면 좋겠습니다. 주님 모든 영혼들을 구원해 주소서. 아멘.”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