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현교회(이상화 목사)는 21일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성탄 선물박스 300개를 만들어 나눴다. 부산 호산나교회(유진소 목사)도 24일 사랑의 성탄선물 나누기 행사를 펼친다. 예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자는 것이다. 이외에도 많은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전하고자 다양한 이벤트를 벌인다.
1987년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였다. 그해 12월 24일 모 일간지는 각 교회의 차분한 성탄행사를 보도했다. “성탄절을 교회 교우들의 교제 기회로 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교단 단위의 거창하고 화려한 대외적 행사는 차츰 사라지고,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도 함께할 수 있는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고 썼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들은 한결같이 이웃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애써오고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그 방법, 그 모습은 분명히 달라졌다. 지난 11일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페이스북에 1987년과 오늘의 달라진 교회 성탄풍경을 물었다.
페친들은 가장 크게 달라진 것으로 ‘새벽송’을 꼽았다. 성탄절 이른 새벽에 교회 소규모 팀이 교인들 집을 방문, 캐럴 등을 부르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다. 1987년 즈음엔 교회 대부분이 새벽송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주거 문화가 아파트로 바뀌었고 세상인심도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엔 주민들이 캐럴이나 찬송가 소리에 새벽잠이 깨도 이해해줬다. 그러나 요즘은 소음공해라며 민원을 제기한다. 그렇게 눈치를 보다 점점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아이디 ‘김동조’님은 “1987년은 제가 고3때인데요, 교회에서 성탄전야 예배를 드리고 부서별로 발표도 하고 기관별로 모여서 선물 교환도 했다”며 “그러다가 다시 삼삼오오 모여 각 가정을 방문했다”고 추억했다. ‘Rho Sung Durk 3’님은 “성도들 집을 돌다보면 으레 교회 안 다니는 분들도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우리한테도 불러주면 안 되나요’라고 말을 건넸다”며 “새벽송 돌다가 다른 교회 성도들 만나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반갑게 인사도 나눴다”고 댓글을 달았다.
페친들은 요즘 새벽송을 볼 수 없게 된 것을 무척 아쉬워했다. ‘윤희자’님은 “1987년엔 강원도에서 살았는데 교회 마당에서 새벽송 가는 이들 먹이려고 만두를 한 부대씩 빚은 생각이 난다”며 “그때가 너무 그립다”고 했다. ‘권성일’님은 “새벽송할 때 졸다가 논두렁에 빠진 기억이 있다”며 “그때는 참 마음이 설레고 그랬는데 지금은 이 사회가 그냥 공휴일로만 여긴다”고 아쉬워했다. ‘Jungin Andrew Lee’님은 “우리 교회는 지금도 새벽송을 하고 있다”며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오지나 않을까 무척 조심한다”고 댓글에서 밝혔다.
30년 전 교회는 새벽송에 앞서 성탄절 전야 행사로 ‘문학의 밤’을 열었다. 교회학교 아이들이 성극, 찬양 등을 준비해 부모를 초청,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이민희’님은 “87년엔 제가 6살 주일학교 시절이었는데 저학년은 율동을 하고 고학년은 성극을 준비했다”고 기억했다. ‘천선녀’님은 “‘노래할 이유있네’라는 주제로 문학의 밤을 했던 학창시절 추억이 아련하다”고 말했다.
그 외에 페친들은 다양한 성탄 추억을 꺼내 놓았다. ‘김재광’님은 “87년 당시 교회를 건축했다. 예산이 부족해 온 성도가 논밭 일을 해서 2년 만에 교회를 완공했다”고 했다. ‘JungSung An’님은 “비 오는 날 새벽송을 돌다가 미끄러져서 다쳤었다”, ‘이현정’님은 “우리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은 성탄절에 한복을 입고 하나님께 찬양했었다”고 회상했다.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기독인 아니면 어때… 이웃과 함께
입력 2017-12-23 00:00 수정 2017-12-25 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