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명장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Krzysztof Kieslowski·1941∼1996)는 십계명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총 10편의 연작물 중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은 살인을 저지른 한 젊은이에게 사형이 집행되는 과정을 다루며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새롭게 해석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온 한 젊은이가 무심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다시 법제도가 무심하게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과정을 담아 인간이 소외되는 사회제도와 법체계를 비판한다.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세 번째 살인(포스터)’은 많은 부분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능력 있는 변호사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 사장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스미(야쿠쇼 고지)의 변호를 맡게 된다. 처음에 분명해 보였던 살인사건은 뭐가 진실인지 점점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져든다.
영화는 살인을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룬다. 타인을 죽이는 것으로서의 살인, 사회와 법에 의해 실행되는 제도적 살인, 마지막으로 자신에 대한 살인이다. 자신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하는 미스미의 태도는 ‘선의’와 ‘악의’를 구분할 수 없게 한다. 시게모리는 그와 접견하며 사건의 진실에 대한 의문과 혼란에 빠진다.
‘세 번째 살인’은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등 주로 가족과 일상에 대한 잔잔한 성찰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었던 고레에다 감독이 당분간 가족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만든 서스펜스드라마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등장인물과 상황 간 가족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이어진다.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30년 전 미스미에게 사형을 면하게 해준 판사였고, 아들 시게모리는 동일인의 살인사건을 담당한다.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판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고 생각하며 후회한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짐은 아들에게 지워진다. 변호사와 피해자, 살인자의 삼각구도는 딸을 중심으로 가족이라는 감정적 고리로 연결된다. 인간의 감정과 사고가 혼자만의 것이 아닌, 다른 존재와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며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누굴 심판하는 것은 누가 정하는 거죠” “인간은 태어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자기의지와 상관없이 생명을 빼앗기기도 한다” 등의 영화 속 대사는 인간본성과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삶의 인과관계를 알고 싶어 한다. 생의 근원과 고난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근대의 계몽적 사고와 과학적 성과는 자연의 법칙과 인과율을 확신했지만, 현대는 다시 모든 것을 의문에 부치게 했고 진실은 모호해졌다.
결국 미스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사키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아요”라며 항의한다. 침울한 마음으로 법정을 나서는 시게모리의 얼굴에 저녁노을의 붉은빛이 가득하다. 무심결에 그는 손을 들어 얼굴에 묻은 붉은빛을 거둬 내려한다. 그리고 그는 십자로에 서서 여전히 의문에 잠긴다. 진실은 모호해졌다. ‘세 번째 살인’은 그렇다면 누굴 향한 것인가.
시게모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의 얼굴엔 죄의 핏빛이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삶의 도정 어느 순간 스스로 깜짝 놀라며 그 피를 닦아내고 싶을 것이다. 아무리 애써도 그 어둠의 그늘은 스스로 닦아낼 수 없다. 누구든 십자가 앞에 서야 한다.
임세은 영화평론가
[임세은의 씨네-레마] 우리는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
입력 2017-12-23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