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기준 우리나라 진료비 1위는 뇌질환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은 23조원에 이른다.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치매 등 퇴행성 뇌질환 환자가 늘면서 뇌연구에 대한 중요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인공지능(AI) 연구 발달도 뇌연구를 촉진시키고 있는 가운데 인간의 뇌에 대한 깊은 이해는 수많은 난치병 극복 및 과학기술의 혁명적 진화로 이어지는 열쇠다.
뇌과학이 미래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강력한 블루오션 중 하나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은 국가 차원의 대규모 뇌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2013년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발표, 10년간 47.5억 달러(약 5.2조원)를 뇌연구에 투자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에 착수해 25개국, 135개 기관이 공동으로 총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입하고 있다. 일본은 2014년부터 연간 30억엔(1차연도 300억원, 2차연도 400억원)을 들여 영장류의 뇌지도를 그리는 ‘브레인 마인즈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중국은 2016년부터 뇌연구와 AI를 주요 국가전략사업으로 선정하고 ‘차이나브레인 프로젝트(中國大腦)’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19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한 후 10년 단위로 계획을 수립해 뇌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제1차 뇌연구 태동기, 제2차 기반 확충기를 거치면서 기초연구기반을 강화하고 산·학·연 협력기반을 구축해 왔다. 2008년 493억원에 불과했던 예산은 2017년 1367억원으로 증가했고, 덕분에 2016년 기준 SCI, SSCI급 논문 수는 3359건(세계 10위), 특허는 78건(세계 6위)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작될 제3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은 기존 성과를 바탕으로 혁신적 뇌융합 기술을 개발하고, 산업화 기반을 마련해 뇌연구 신흥강국으로 올라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뇌연구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뇌은행 및 뇌연구자원(뇌조직)과 관련한 현행 법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뇌은행은 인간의 뇌를 기증받아 보존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기관이다. 연구자들은 뇌질환 등의 연구를 위해 뇌은행에서 확보한 뇌조직을 분양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상당히 제한적이다. 더구나 현대 뇌과학은 인간의 뇌를 직접 연구하는 추세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어 뇌은행은 반드시 필요하다.
뇌은행은 생명윤리안전법에 따라 개설·승인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살아있는 환자의 뇌조직을 채취해 자원을 확보한다. 하지만 실제로 확보해야 하는 뇌자원 대부분은 사후 뇌조직으로, 이 경우 뇌기증부터 분양까지 일련의 절차와 윤리적 기준은 ‘시체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을 따르고 있다. 시체법 제1조와 제10조에 따르면 시체 해부는 사인의 조사와 병리학적·해부학적 연구를 위해서만 가능하고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없다. 현행법에 따르면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등 오믹스융합연구를 해야 할 뇌연구자 입장에서는 뇌은행 활용범위가 상당히 축소되는 셈이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뇌연구자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어서다. 시체법 개정 등 생명윤리 논란을 야기하지 않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 방법은 뇌연구촉진법 개정이다. 현행 법률에 없는 뇌연구자원과 뇌은행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에 따라 뇌조직 분양에 대한 정확한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환자에서 유래하는 뇌조직과 시체에서 유래하는 뇌조직을 포괄하는 것으로 뇌연구자원에 대한 정의를 신설하고, 이를 수집 및 보존해 직접 이용 혹은 뇌연구를 위해 타인에게 제공하는 기관으로 뇌은행을 명시해야 한다.
뇌연구는 우주와 함께 마지막 남은 미지의 분야로 꼽힌다. 선진국은 이미 30년 전부터 뇌은행을 설립하고 많은 뇌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우리나라 뇌연구에 국가 차원의 집중적 지원과 더불어 국민들의 폭넓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김경진 한국뇌연구원 원장
[기고-김경진] 뇌연구, 기술보다 법 개정을
입력 2017-12-21 1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