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얼굴 그림 그린 추상화가 백철극을 아시나요?

입력 2017-12-22 00:03
백철극 화백이 1984년 미국 뉴욕에서 발표한 ‘붉은 그리스도(Christ in Red)’와 1932년 일본 유학 전 그린 자화상. 백중필 선교사 제공
백중필 선교사
백철극(1912∼2007) 화백은 캐나다와 미국에서 활동한 한인 추상화가다. 한국 추상화의 대부로 알려진 김환기 화백과 1930년대 일본 니혼대(회화과)에서 유학생활을 함께했을 정도로 예술 혼을 불태웠다. 1960년 캐나다로 이민한 백 화백은 1980년 파리시장상 등을 수상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왕성한 해외활동에 비해 국내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고독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다. 때문에 그는 한국미술의 숨겨진 역사로 평가받는다.

최근 백 화백의 아들인 백중필(64) 선교사가 도쿄를 방문해 부친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지난 18일 도쿄 시내 한 카페에서 만난 백 선교사는 “아버지가 다녔던 니혼대 미술학적과를 찾았지만, 1943년 화재가 발생해 기록이 전소됐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며 “다행히 아버지가 거처했던 하숙집 자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 화백이 살던 하숙집은 지금은 한 여자중고등학교로 변신해 있었다. 지역 안내판에는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라고 표기돼 있었다고 백 선교사는 전했다. 그는 이외에도 도쿄의 오래된 서점을 찾아 부친이 펼쳐봤을 고흐와 고갱, 세잔 등의 작품집들도 둘러봤다. 의사이기도 한 백 선교사는 그간 아버지 작품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 왔다.

백 화백은 1970년대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린 ‘추상적 성화(聖畵)’를 여러 편 남겼는데, 백 선교사는 이 그림들을 보면서 부친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됐다고 했다.

백 화백은 가난한 일본 유학생으로 춥고 배고픈 시절을 보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행인들 초상 스케치를 그려 팔았고, 전차운전과 신문배달도 했다고 한다. 백 선교사는 “어렸을 때 아버지는 항상 오른손을 배에 얹고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다”며 “일본유학 시절 겨울이면 다다미방에서 배를 따뜻하게 하지 못해 얻은 후유증이었다. 배에 한기가 조금만 느껴져도 복통이 나서 항상 손을 덮었다”고 회고했다.

백 화백은 500여점의 작품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아들 백 선교사가 소장한 것만 150점이며, 나머진 일본 중국 유럽 등지에 흩어져 있다. 백 화백은 일본 유학 이후 잠시 중국 상하이에서도 활동했다. 1940년엔 일본미술가협회가 주최하는 전시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백 화백의 작품 두 점은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됐으며 2012년 밀알미술관에서 특별 회고전이 열렸다.

도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