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엔터스포츠] 라이벌로… 조력자로… 형제 자매들, 평창 그뤠잇!
입력 2017-12-22 05:00
평창올림픽, 패밀리가 뜬다
男 아이스하키 김기성-김상욱
서로 눈빛만 봐도 척척 생각 통해
아시아 리그 MVP에 한번씩 선정
신상우-신상훈도 ‘백지선호’ 주역
지난 시즌 안양 한라 우승 이끌어
몸싸움과 스피드 능력 뛰어나
女 아이스하키 박윤정-한나 브랜트
韓·美 대표로 한 무대서 활약 기대
박윤정 입양 7개월 후 한나 태어나
日 女 스피드스케이팅 나나-미호
상대 견제 협력 플레이하며 선전
美 시부타니 남매도 13년째 호흡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남자 평행 자이언트 슬랄롬 결승전. 스위스 출신의 형제 시몬 쇼흐(39)와 필리프 쇼흐(38)가 만났다. 접전 끝에 승부가 갈렸고, 금메달(필리프)과 은메달(시몬)을 나눠 가진 형제는 뜨거운 포옹을 나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도 아이스하키, 스피드스케이팅, 피겨 등 다양한 종목에서 형제자매들의 아름다운 우애가 펼쳐질 전망이다. 동계 종목에선 가족끼리 레저로 즐기다 선수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아 형제자매 선수가 많다. 같은 종목을 하는 형제자매 선수들은 어려울 때 서로에게 힘을 주고, 기술도 공유하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의 김기성(32)-김상욱(29·이상 안양 한라), 신상우(30·안양 한라)-신상훈(24·대명 상무) 형제는 서로 눈빛만 봐도 척척 호흡이 맞는 공격수들이다. 이들은 평창올림픽에서 한국의 첫 골과 첫 승리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계랭킹 21위인 한국은 평창올림픽에서 예선 A조에 속해 강호 캐나다(1위), 체코(6위), 스위스(7위)와 맞붙는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박지성’이라고 불리는 김기성은 “2002 한일월드컵 때 한국 축구 대표팀이 4강 기적을 일으켰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 없다”고 열의를 보이고 있다.
김기성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아이스하키 경기를 본 뒤 그 매력에 빠져 초등학교 1학년이던 동생과 함께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형제는 서로 의지하고 노하우를 알려주며 기량을 닦았다. 형제는 서울 홍익초-경성중-경성고-연세대-안양 한라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2014-2015시즌 김기성이 먼저 아시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동생인 김상욱이 2016-2017시즌 MVP를 받아 최초로 형제가 모두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김기성-상욱 형제는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VTB 아이스 팰리스에서 끝난 2017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에서도 맹활약했다. 김상욱은 14일(한국시간) 랭킹 1위 캐나다와의 개막전(한국 2대 4 패)에서 한국의 두 골을 혼자 책임졌다. 형 역시 15일 열린 핀란드와의 2차전(한국 1대 4 패)에서 선제골을 터뜨렸다. 2경기에서 나란히 골을 뽑아낸 형제는 한국 대표팀의 핵심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신상우-상훈 형제도 ‘백지선호’의 앞선을 이끄는 대들보다. 형인 신상우는 몸싸움이 뛰어나 북미와 유럽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이 장점이다. 동생인 신상훈은 빠른 스피드로 상대 수비를 휘젓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2016-2017시즌 안양 한라의 아시아리그 통합우승을 합작했으며, 지난 4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수비수 박윤정(25·미국명 마리사 브랜트)은 미국 대표팀의 동생 한나 브랜트(24)와 평창올림픽 링크에 함께 설 꿈에 부풀어 있다. 1992년 한국에서 태어난 박윤정은 4개월 만에 미국 미네소타주의 그렉-로빈 브랜트 부부에게 입양됐다. 12년째 아이가 없던 브랜트 부부는 박윤정을 입양한 지 7개월 만에 한나를 얻었다. 박윤정과 한나는 어려서부터 쌍둥이처럼 늘 붙어 다녔다. 또 춤과 체조, 피겨스케이팅 등을 함께 배우며 우애를 다졌다.
박윤정이 자란 미네소타는 아이스하키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피겨스케이팅에 빠졌던 박윤정은 7세 때 한나를 따라 아이스하키를 시작했다. 아이스하키의 매력에 빠진 박윤정은 전미대학스포츠협회(NCAA) 2부 리그인 구스타부스 아돌프스 대학에서 4년 내내 선수로 활약했다. 박윤정은 2015년 미네소타 출신으로 한국 대표팀 골리 코치인 리베카 룩제거로부터 한국 대표팀에 지원해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박윤정은 이를 수락, 그해 7월 한국 땅을 밟았다. 박윤정은 2016년 7월 국적회복 허가를 받았고, 12월 국적취득 후 대표팀에 합류했다.
현재 미국 세미 프로팀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는 한나 역시 평창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아이스하키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한나는 아이스하키 명문 미네소타대에 진학했으며, 1학년 때인 2012년 역대 최연소로 미국 대표팀에 선발됐다. 하지만 2학년 때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나가 미국 국가대표로 평창올림픽 출전이 유력해 자매는 서로 다른 국가의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 무대를 누빌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 로빈 브랜트는 최근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와의 인터뷰에서 “한나가 언니 마리사와 함께 평창올림픽 무대에 서게 된다면 더욱 기쁠 것이다. 이건 마치 정해진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다카기 나나(24), 다카기 미호(22) 자매도 눈길을 끈다. 특히 미호는 올 시즌 1차 월드컵 1500m 우승을 시작으로 4차 월드컵까지 1000m, 1500m에서 잇달아 시상대에 오른 중거리 강자다. 마지막 월드컵이었던 4차 대회에서도 1500m 우승을 차지했다.
다카기 자매는 팀추월과 매스스타트 등 단체종목에서는 함께 나서고 있다. 둘은 사토 아야노와 호흡을 맞춰 1차 월드컵 여자 팀추월에서 우승했으며, 4차 월드컵에서는 세계 신기록을 작성했다. 다카기 자매는 협력 플레이로 매스스타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자매 중 한 명은 레이스 도중 다른 한 명이 치고 나갈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러면서 자신은 자매와 경쟁하는 선수와 몸싸움을 하며 견제한다. 피를 나눈 자매이기에 이런 희생이 가능한 것이다.
다카기 자매의 선전은 한국에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국 여자 매스스타트의 간판 김보름(24)은 지난 2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직후 열린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선 다카기 자매의 전략에 밀려 3위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미호는 레이스 초반 사토와 함께 속력을 높여 2위 그룹과 거리를 벌렸고, 나나는 2위 그룹에 있던 우승 후보 김보름을 견제했다. 그 결과 미호가 금메달, 사토가 은메달을 따냈다. 김보름은 평창올림픽에서 다카기 자매의 ‘희생 작전’을 극복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평창올림픽 피겨 아이스댄스에서는 일본계 미국인 알렉스(26), 마이아 시부타니(23) 남매가 출전해 금메달을 노린다. 2016년과 2017년 2회 연속 미국 챔피언에 등극한 시부타니 남매는 13년째 호흡을 맞춰 오고 있다. ‘시브십스’(ShibSibs·성인 Shibutani와 남매란 뜻의 Siblings를 합친 말)라는 애칭을 가진 남매는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은 어린 나이에 소치올림픽에 출전해 9위를 차지했다.
윤영길 한체대 교수는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형제자매 선수들의 경우 유전적으로 신체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에 기술을 공유하기 쉽다”며 “특히 이들은 서로 의지하고 기댈 수 있기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다른 선수보다 수월하게 탈출할 수 있다. 형제자매 선수는 선의의 라이벌인 동시에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