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신간 200∼300권 도착
빠르게 일별하고 소개할 책 선정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세상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책
인공지능 소재로 한 책도 많아
‘아날로그의 반격’ ‘다크 머니’ 등
주목할 현안 파고든 작품도
국내에선 ‘지방도시 살생부’와
‘한식의 품격’이 눈길 끌어
기자가 꼽은 올해의 책은 ‘랩걸’
매주 국민일보 문화부에 도착하는 신간은 줄잡아 200∼300권에 달합니다. 이들 책을 일별하고 선별해 ‘책과 길’ 지면에 소개하는 게 저희들의 일이죠. 시간은 부족하고 봐야할 신간은 많으니 다뤄져야할 책이 누락되는 경우도 자주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좋은 책이 국민일보 지면에 소개되지 않았다면 그건 온전히 저희들의 불찰일 겁니다.
연말이면 신문사나 대형서점은 ‘올해의 책’ 리스트를 발표합니다. 출판계 관계자나 독자들을 상대로 설문을 진행해 2017년을 대표할 만한 책을 추린 내용이지요. 저희도 그런 리스트를 만들까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만그만한 리스트를 하나 더 내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더군요. 대신 올해 ‘책과 길’에 소개된 비문학 신간을 갈무리한 기사를 싣기로 했습니다. 이 글은 지난 1년간 ‘책과 길’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띄우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이 기사의 첫머리를 어떤 책을 소개하면서 시작할지 오래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은 세상의 관제탑 역할을 할 때가 많은데 지난 5월 출간된 ‘호모 데우스’가 그랬으니까요. 이 책은 그 유명한 이스라엘 학자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 이어 선보인 후속작이었습니다.
저자 특유의 박람강기(博覽强記)한 재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라틴어 제목인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신이 된 인간’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미래엔 ‘호모 데우스’로 거듭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었죠.
말미에 등장하는 그의 ‘예언’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대다수 인간은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한다, 정보와 데이터를 숭배하는 사상이 세상의 조종간을 잡는다, 데이터의 흐름만 중시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그의 전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요.
‘호모 데우스’를 읽고 정보나 데이터의 가치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에겐 ‘인포메이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의 부제는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히스토리’. 그야말로 정보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그러모은 역작이었습니다. 저자는 ‘나비효과’라는 말을 퍼뜨린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임스 글릭인데, 그의 미래 전망은 하라리와 달랐습니다.
“우리는 유령처럼 되진 않을 것이다. 정보를 끊임없이 뒤지면서 재배치하고, 불협화음과 허튼소리가 모인 곳 한가운데서 의미 있는 행들을 찾아낼 것이다. 그 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역사를 읽고, 우리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수집해낼 수 있다.”
미래를 내다본 책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소재는 역시 인공지능(AI)입니다. 전문가들은 AI가 바둑만 잘 두는 게 아니라 인간의 뇌처럼 다채로운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범용인공지능’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AI가 열어젖힐 미래가 궁금하다면 ‘슈퍼 인텔리전스’나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 3.0’을 읽어보시길. 이들 책을 읽는다면 인류의 앞날을 엿보는 근사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인류의 미래를 얘기할 때 AI 못지않게 자주 거론되는 분야는 생명공학일 겁니다. 특히 유전자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기술은 “인류가 발견한 제2의 불”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지요. 김홍표 아주대 교수가 펴낸 ‘김홍표의 크리스퍼 혁명’을 추천합니다. 이 기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우리는 앞으로 생명공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윤리적 맹점은 없는지 꾸준히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이면을 들추다
자, 이번엔 우리가 주목해야할 ‘현안’을 파고든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볼까 합니다. 먼저 캐나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의 저작인 ‘아날로그의 반격’. 이 책은 세계 곳곳에서 답지하는 아날로그의 승전보를 한 데 모은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아날로그가 과거의 영광을 완벽하게 회복할 것이란 주장을 편 건 아니었지요. 아날로그는 멸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2인3각 경기를 하듯 디지털과 어깨를 겯고 미래를 개척할 것이라는 전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불문곡직하고 떠받드는 빅데이터의 세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신간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여성 수학자가 펴낸 ‘대량살상수학무기’. 빅데이터가 어떻게 세상의 불평등을 단단하게 만드는지 살핀 내용이었는데, 이런 대목에선 밑줄부터 긋게 되더군요.
“데이터 처리 과정은 과거를 코드화할 뿐, 미래를 창조하지 않는다. 미래를 창조하려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런 능력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우리는 더 나은 가치를 알고리즘에 명백히 포함시키고, 우리의 윤리적 지표를 따르는 빅데이터 모형을 창조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가끔은 이익보다 공정성을 우선시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갑부 형제인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를 다룬 ‘다크 머니’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 ‘코크 형제’는 미국 금권정치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죠. 장막 뒤에서 세계의 핸들을 움켜쥐고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코크 형제의 스토리는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이들은 이문을 좇는 데 급급하면서 정부를 백무소용의 존재로 여기는 자유지상주의를 지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찰스 코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눠 가져야 할 때면 이런 농담을 던졌다고 합니다. “나는 그저 정당한 내 몫을 받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까 전부 다 가져야겠어.” ‘다크 머니’를 읽는다면 미국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국내 저자의 책 가운데 눈길을 끌었던 책은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펴낸 ‘지방도시 살생부’였습니다. 작금의 지방 공동화(空洞化) 문제가 결국엔 지방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담았는데, 눈길이 갔던 건 마 교수의 처방전이었습니다. “지방도시의 외곽개발을 멈추자. 흩어진 도심 기능을 하나로 모으면서 수도권에 ‘맞짱’을 뜨는 ‘압축도시’를 만들자.”
한국사회의 고약한 가족주의가 일으키는 각종 폐해를 살핀 ‘이상한 정상가족’도 빼놓을 순 없겠네요. 가족 단위의 ‘팀플레이’를 통해 계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한국인들의 모습, 그 안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인권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작품이었습니다.
2017년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은 지 20년이 된 해이기도 했습니다. 서점가에는 IMF 외환위기의 기승전결을 두루 확인할 수 있는 저작이 등장했는데, 바로 이제민 연세대 교수가 펴낸 ‘외환위기와 그 후의 한국 경제’였습니다. 당시 이 책을 다룬 ‘책과 길’ 기사의 제목은 이랬습니다. “미국이 만들고 한국 노동자가 떠안은 위기.”
날카롭거나 따뜻하거나
거창한 얘기가 담긴 건 아니지만 주목할 만한 책이었다고 여겨지는 올해의 신간 몇 권을 더 꼽아보고자 합니다. 지난 6월 이 지면에 소개한 ‘한식의 품격’을 기억하시는지. 음식평론가 이용재씨의 작품으로 가독성이 상당했습니다. 저자는 요령부득인 한식의 상차림을 꼬집으면서 우리네 밥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식의 품격’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저자의 깐깐한 비평에 넌덜머리가 날 수도 있겠다.” 확실한 건 깐깐한 만큼 통렬한 책이라는 점입니다.
미국 식물학자 호프 자런의 에세이 ‘랩걸’도 언급하고 싶습니다. 저자는 실험실에서 경험한 감격의 순간들을 전합니다. ‘과학하는 여자’로 살면서 겪은 차별과 편견의 스토리도 들려줍니다. 그는 인간과 식물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고. 그건 바로 빛을 향해 자란다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은 제가 꼽는 ‘올해의 책’이기도 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세상의 관제탑’ 양서와 만난 1년… 2017 ‘길잡이’가 된 책
입력 2017-12-2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