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읽기] ‘잊혀진 전쟁’ 예멘 내전 1000일… 중동서 살아난 ‘베트남전 악몽’

입력 2017-12-21 05:05
예멘 수도 사나에서 지난 6일(현지시간)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습으로 무너진 대통령궁 앞을 걸어가고 있다. 사우디는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예멘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고 있다. AP뉴시스

정부·후티 반군 충돌서 발단
이란·사우디 대리전 확전
세계 최빈국 고통도 한계 상황
1만명 사망 700만명 아사 위기
피아 구분없는 혼돈 지속
고통 끝낼 뾰족한 방법 안보여


예멘 내전이 20일(현지시간) 기준으로 1000일째에 접어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치러지고 있는 예멘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는 ‘잊혀진 전쟁’이 됐다. 그 사이 예멘 국민은 1만명 넘게 숨지고 700만명이 아사 위기에 처하는 등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알자지라,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1918년 1차 대전으로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붕괴한 후 예멘은 남북으로 갈렸다. 북예멘은 일련의 군사쿠데타 속에 78년 알리 압둘라 살레가 권좌에 올라 독재정치를 폈다. 북예멘은 90년 아랍권 첫 사회주의 국가였던 예멘인민민주주의공화국(남예멘)을 흡수해 통일을 이뤘다. 이후 예멘은 4년 만에 다시 분단됐다가 재통일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1년 ‘아랍의 봄’ 반정부 시위로 독재자 살레 대통령이 사퇴하면서 정국이 혼란해진 가운데 후티 반군은 예멘을 공격했다. 후티 반군은 90년대 살레 대통령의 부패에 항거한 시아파 지도자 후세인 알 후티가 조직했다. 후티 반군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을 축출한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를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헤즈볼라의 지원자인 이란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됐다.

살레가 물러난 후 수니파 출신의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자 후티 반군의 반발은 계속됐다. 후티 반군은 살레와 비밀 결탁한 뒤 2015년 1월 수도 사나를 점령했다. 경쟁자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인접국 예멘을 장악하는 것은 사우디에 악몽이었다. 하디 대통령은 후티 반군을 피해 남부로 피신하면서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에 SOS를 요청했다. 사우디는 이에 2015년 3월 26일 수니파 아랍 연합군을 구성해 후티 반군 공습에 나서면서 내전이 본격화됐다.

사우디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예멘 내전은 오히려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예멘 개입을 주도한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에 대해 “중동판 베트남전의 늪에 걸려든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후티 반군은 최근 사우디 수도 메카의 왕궁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하는 등 사우디군에 강하게 맞서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하고 사우디에 다시 손을 내민 살레를 지난 4일 살해했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던 예멘은 내전의 장기화 속에 유혈사태와 전염병으로 국민들의 고통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1000일 동안 8600여명이 폭격과 교전 등으로 숨졌고, 2000여명이 콜레라로 사망했다. 인구의 70%인 2000만명이 끼니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며, 이 중 700만명은 심각한 영양실조로 아사 위기에 처했다. 유니세프(UNICEF)은 이날 1100만여명의 어린이에게 긴급 지원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문제는 예멘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동의 다른 내전 전장인 시리아는 세계 열강이 평화협상을 이끌면서 종식되리라는 희망의 조짐이라도 보이지만 예멘은 말 그대로 잊혀지고 말았다. 현재 예멘에서 실질적인 휴전 협상은 전혀 진전이 없다.

최근 전 세계 유명인사 350명이 조직한 ‘예멘은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이름의 온라인 모임은 지난 18일자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예멘 내전은 중동의 최빈국을 전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로 몰아넣었다”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에 즉시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장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