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배우 강신일의 삶과 신앙

입력 2017-12-21 00:00
배우 강신일이 지난 9월 케냐 빈민지역 방문 당시 만난 소년 가장 왐부아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유독 수줍음 많은 소년은 고교시절 친구 따라 처음 가 본 교회에서 ‘연극’이란 세계를 마주한다. 소품과 조명장치를 둘러메고 보따리장수처럼 교도소, 병원, 한센인 마을, 미혼모 합숙소 등 각 지역 문화 소외계층을 찾아가 성극 무대를 선보이기를 4년 여. 소년은 인생의 멘토가 돼 준 선배와 함께 극단을 세우고 연극인으로서의 삶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대한민국 배우로서 대중에게 여러 사람의 인생을 묵직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영화 ‘공공의 적’의 엄 반장,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윤 중장 역을 맡으며 선 굵은 연기를 보여 준 배우 강신일(57)의 이야기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이화장길 동숭교회(서정오 목사)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여기가 제 연기의 출발점이 된 곳이죠. 벌써 40년 전이네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 따라 가게 된 동숭교회에서 강신일은 운명처럼 연극 무대에 발을 들였다. 연극을 좋아했던 청년부 선배들이 성극을 준비해 무대에 올렸고 그 단원이 된 것. 당시 연극 활동의 주축이 됐던 사람이 ‘대한민국 연극계의 아버지’라 불리는 배우 겸 연극연출가 최종률(동숭교회 원로) 장로다.

“연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극을 통해 기독교 문화를 세울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 모여 무대에 표현된 것이죠. 우리가 서야 할 무대를 필요로 하는 곳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눴고요.”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제대로 된 무대에서 정기적으로 공연을 펼치자’는 공감대 속에 1980년 창단한 것이 극단 ‘증언’이다. 그는 첫 공연이었던 ‘도마의 증언’에서 주인공 도마 역을 맡으며 연극인으로서 본격적인 출발선에 섰다. 이후 ‘연우무대’ ‘학전’ ‘차이무’ 등 국내 연극계에서 창작극 활성화의 중심에 섰던 극단에 몸담으며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내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지향점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무명의 젊은 예술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5년 여 동안 무대를 내려와 극장 스태프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대에 오른 이들이 지금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사랑받고 있다. 배우 설경구 유오성 권해효 등이 당시 소중한 기회를 얻었던 이들이다.

이 교회 장로인 강신일은 “신앙은 자랑하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삶 가운데 만나는 이들이 신앙인의 태도와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9월엔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과 아프리카 케냐의 빈곤지역을 방문해 가난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소감을 묻자 잠시 숨을 고른 강신일은 “괜히 미안했다. 나는 잠시 왔다가는 사람인데…”라며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 역할을 할 수 있게 인도했음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소년 강신일이 40년 전 성극 무대에 올랐을 때 느꼈을 소명의식이 엿보였다.

그는 연기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감사를 덧붙였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 1:27)고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이 여기 있죠. 연기는 제 근본을 찾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작품 속 배역을 통해 여러 사람의 인생을 경험하게 해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제겐 더 많은 기회를 준 거 아닐까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