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이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이 21일 막을 올린다. 자코메티는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조각가’ ‘피카소가 시기한 조각가’ 같은 수식어가 붙는 현대미술의 거인이다.
특별전은 국민일보가 창간 3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다. 프랑스의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과 공동 주최한다. 한국에서 자코메티 전시회가 열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개막을 하루 앞둔 20일, 특별전이 열릴 예정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을 찾았다. 관객을 맞을 채비가 거의 끝난 특별전 현장을 미리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전시장에서 만난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압도적이었다. 세계의 예술가들과 미술 애호가들이 왜 자코메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들은 묵직하면서도 그윽한 분위기를 풍겼다. 사진으로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느껴졌다. 철사처럼 가느다란 형태로 인체를 구현한 특유의 작품들을 마주할 땐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감동을 배가시키는 전시장의 동선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자코메티의 일생을 정리한 연보였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확인한 뒤 코너를 돌면 자코메티의 유년기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하나씩 등장했다. 자코메티가 10대 시절 가족들을 그린 유화 작품,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만날 수 있었다.
전시장은 자코메티의 ‘모델’이 돼준 인물들을 중심으로 구분돼 있었다. 자코메티의 아내로 한때 집안의 생계까지 도맡았던 아네트, ‘최초의 모델’이자 남동생이었던 디에고, 자코메티의 연인이었던 캐롤린과 이사벨, 유일한 동양인 모델 야나이하라 이사쿠….
특별전 현장에서는 자코메티의 ‘작품’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이 대표적이다. 그는 1926년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23㎡(약 7평) 크기의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에 들어섰을 땐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묵상의 방’이었다. 66㎡(약 20평) 크기의 공간에는 그의 대표작인 ‘걸어가는 사람’(1960) 석고 원본 하나만 놓여 있었다. 높이 188㎝ 조각상을 마주하는 순간 왜 이 작품이 불후의 명작일 수밖에 없는지 느낄 수 있었다. 조명 아래 우뚝 서 있는 이 작품에서는 압도적이면서도 고고한 아우라가 묻어났다.
현장에서 만난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의 큐레이터인 크리스티앙 알란디트는 “한국에 전시되는 수많은 작품 중 ‘걸어가는 사람’은 20세기 예술사의 상징과도 같은 조각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프랑스에서는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 “2차대전이 남긴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간은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특별전을 찾는 관객들은 조각 회화 드로잉 판화 등 총 116점을 만날 수 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을 이끄는 카트린느 그레니에 재단장은 “역사적인 전시를 함께 준비한 국민일보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글=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걸어가는 사람’과 만나 희망을 얘기해 보세요
입력 2017-12-20 19:19 수정 2017-12-20 2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