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싫습네다… 목사님네랑 살갔시오”

입력 2017-12-21 00:00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 부부가 지난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너스톤교회에서 탈북 세 자매와 함께 가수 출신 목회자 이종용 목사를 만나 기념촬영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 목사, 탈북한 큰언니와 막내 동생, 김 목사의 부인인 박에스더 목사, 둘째 동생, 이종용 목사. 갈렙선교회 제공
지난해 10월 탈북해 중국에서 제3국으로 가기 위해 국경을 넘는 탈북 자매들. 갈렙선교회 제공
지난 18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서북구 갈렙선교회 예배당. 성도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북한을 탈출해 국내에 정착한 미성년 자매가 스무살 친언니와 비로소 안전하게 함께 지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대전가정법원 천안지원(판사 고지은)은 탈북민 정모(20·여)씨가 15세와 13세인 자신의 두 여동생을 위해 낸 ‘미성년 후견인 선임’ 심판에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인다고 판결했다. 연고 없는 탈북 미성년자들이 후견인을 지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 양강도가 고향인 세 자매는 지난해 10월 탈북, 중국과 제3국을 거쳐 대한민국 품에 안겼다. 꼭 두 달만이었다. 이 과정에서 탈북민 구호단체인 갈렙선교회의 도움을 받았고, 이번 판결로 이 단체 대표 김성은(52)목사의 가족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김 목사의 부인 박에스더(47·천안서평교회) 목사를 후견인으로 결정했다.

세 자매는 어머니 강모씨와 함께 탈북해 중국의 한 벌목장에서 은신하며 지냈다. 그러나 어머니는 중국 공안에 체포됐고 자매는 장기 밀매범들에게 납치됐다. 이때 김 목사가 세 자매를 구출했다. 체포돼 있던 강씨는 김 목사에게 “딸들이 목사님과 함께 살길 간절히 원한다”는 편지를 써서 전달했다. 딸들에겐 “목사님을 아버지처럼 믿고 훌륭하게 자라달라”고 당부했다. 끝내 어머니 강씨는 강제북송됐다.

세 자매도 한국에 들어와 국가정보원이 운영하는 탈북민 수용시설 ‘하나원’ 입소 중 매일같이 김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김 목사에게 “아빠랑 같이 지내던 때가 그립다” “하루빨리 아빠랑 신나게 뛰놀고 재미나게 놀고 싶다”고 했다. 또 “하나원에서 나가는 날 바로 전화할테니 꼭 데리러 오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김 목사는 세 자매가 사랑과 애정으로 양육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와 법원에 각각 가정위탁 및 후견인 신청을 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통일부에서 위탁받은 무연고 탈북 청소년은 이날 현재 96명이다. 일부 탈북 부모의 이혼이나 학대, 가정불화, 남한정착 후 부모사망 등의 사연을 가진 청소년까지 포함하면 실제 무연고 탈북 청소년의 숫자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동안 정부는 이들을 고아원이나 쉼터 등 보호시설로 보냈다. 개인가정으로 보내면 무연고 탈북 청소년에 대한 관리감독이 쉽지 않고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김 목사는 “제가 구출한 북한고아 신혁이, 미향이도 그랬다”며 “아이들이 아빠로 생각하니 입양하겠다고 했지만 하나원은 법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보호시설로 보내고 연락을 단절시켰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하나원 관계자는 “탈북 무연고 청소년이 퇴소할 때마다 무연고청소년지원협의회를 개최해 보호단체를 선정한다”며 “본인이 희망하는 쪽으로 반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저희 입장에선 개인가정보다는 그룹홈이나 대안학교가 교육 노하우도 있고 검증된 단체라 그쪽으로 보내온 게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이 사건 소송대리인 이혜선(법률사무소 서담)변호사는 “이번 판결로 무연고 탈북 청소년들이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원하는 곳, 원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했다.

세 자매는 “고아원에 가기 싫습네다. 친절한 목사님 가족이랑 함께 지낼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고 했다. 김 목사는 “탈북고아들은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보호시설보다 대한민국의 가정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정부는 이제 이들이 소송 없이도 가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천안=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