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자코메티] “현대미술 거장 작품 서울서 만나 큰 기쁨”

입력 2017-12-20 19:27 수정 2017-12-20 21:38
처음 한국을 찾은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들이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들 작품은 21일 이곳에서 개막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한국특별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윤성호 기자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국민일보와 알베르토 자코메티 재단이 공동주최하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특별전’을 통해 현대미술의 거장 자코메티의 걸작들을 한국 사회에 선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들을 통해, 이 위대한 조각가의 작품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기대를 모을 만하다.

자코메티의 작품세계를 종래의 예술사적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고찰해줄 것을 주문받고, 나는 전후(戰後) 유럽 사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사고방식이자 자코메티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실존주의’가 그의 작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사고방식(attitude)’이라고 지칭했지만 ‘철학사상(philosophy)’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실존주의는 수세기 만에 초현실주의나 표현주의처럼 ‘주의(ism)’로 명명된 최초의 철학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실존주의는 행동 행위 예술철학 담론 등 삶의 방식을 통해 실현되고, 1950년대 대서양 양안의 문화·반문화 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비트세대는 불온적 태도와 언어를 구사하며 당시 서구사회를 지배했던 부르주아적 삶의 방식에 반발하는 움직임의 첫 시작을 알렸다. 뒤이어 1960년대의 히피 운동은 이전 세대의 비관주의에 반발하며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비트와 히피 두 세대 모두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를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사용했다.

‘모던보이’ ‘모던걸’은 1920년대 초 식민지 조선에서 등장한 개념으로 기존과 다른 예술 및 생활양식을 보인 새로운 형태의 인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실존주의 또한 전후 유럽에서 예술 철학적 관점을 생성하고 사회적 행위자를 포착해 냈다. 이 실존주의의 대가로 추앙받는 이가 자코메티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자면, 자코메티는 실존주의가 정의하고, 인도하고, 표현하고자 시도했던 인간의 상태를 실존주의 그 자체보다 잘 표현한 예술가였다.

자코메티의 조각품은 인류의 기념할 만하거나 영웅적인 면모에 주목하거나, 인생의 행복이나 기쁨 풍요로움을 표현하지 않는다. 실상은 그 정반대이다. 그의 작품은 때로는 인간의 신체와 얼굴과 영혼의 퇴화가 새로운 형태의 그로테스크와 동일시될 수 있는 부조리(absurdity)한 분위기 속에서 비관주의로 점철된 인간상을 보여준다. 1945년 이후 중부 유럽에는 국가적 차원에서 개인과 집단에 자행된 비인간적인 전쟁 행위의 여파로 사회 전반에 짙은 고통과 파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는 1953년 한국의 상황과 대단히 유사했다. 자코메티를 둘러싼 1950년대에는 재즈의 대중화나 프랑스 문학 및 영화 분야의 누벨바그운동, 사뮈엘 베케트와 잭 케루악의 명문, 그리고 ‘부조리’를 문화적 수준까지 끌어올린 예술가들의 등장에 비견할 새로운 형태의 미술이 출현했다.

활동 초기 자코메티는 초현실주의적인 면모를 보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인주의의 길에 접어든다. 그는 기존의 정통 신조와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당대 세대를 사로잡았던 비관주의 부조리 비극성 공허함 무의미함 그로테스크함과 같은 감성을 가장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 그의 작품은 마치 인간의 다양한 열망이 더 이상 오브제가 아님을 이야기하는 듯 했다. 타인에 대한 애정이나 최상·절대성의 추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에는 자코메티나 사르트르, 카뮈와 대조적으로 인간의 노력 및 의지에 따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인간 능력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 이들도 등장한다. 기 드보르를 필두로 한 문자주의인터내셔널, 코브라 그룹, 콩스탕 뉘베니, 국제상황주의, 독립그룹의 구성원들이 이에 해당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는 창조성과 반항성, 인류에 대한 믿음, 진보와 성장에 대한 자신감, 미(美)와 열정의 추구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이런 문화와 사르트르, 자코메티, 실존주의자들 간의 대조적 면모는 1960년대에 들어 보다 극명히 부각된다. 그러나 자코메티의 작품은 흐름의 변화와 무관하게 여전히 현대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으며 미술품을 금이나 부동산과 같은 투자 자산으로 생각하는 수집가들에게 있어 변함없이 매력적인 안전 자산이 되고 있다.

이처럼 위대한 거장의 훌륭한 작품들을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큰 기쁨으로 생각하며, 주최 측에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