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의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1985∼96) 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고(故) 이영훈 작곡가의 곡을 드라마에 녹여 표현할 수 있는 쾌감은 누구에게도 뺏기고 싶지 않았어요.” 올해 데뷔 20주년인 배우 이건명(45)은 최근 개막한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중년 명우를 연기하는 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명우는 타임머신의 기장 같은 역할을 한다.
광화문 연가는 명우가 임종을 1분 앞두고 첫사랑의 추억 속으로 여행을 가는 내용이다.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이건명. 그는 자신도 추억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많아요. 학창 시절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삐딱선을 타서 어머니가 속을 태우셨는데요. 그때로 돌아가면 속을 안 썩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열정으로 가득 찬 대학 시절도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다. 이건명은 같은 역할의 배우 안재욱과 서울예대 재학 시절 신체단련 동아리 활동을 했다. “그땐 정말 잠도 안 잤어요. 우리 동아리가 오전 7시에 모였어요. 조깅하고 애크러배틱과 춤 연습했고요. 밤샘 연습하고 무대 세트와 포스터도 직접 만들고 분장도 우리가 했어요. 늦은 밤까지 연습하고 술잔도 기울이고요.”
이영훈 작곡가의 대표곡들이 작품 속에는 끊임없이 흐른다. 잔잔한 곡부터 시작해 콘서트 느낌의 신나는 곡을 부르면서 옛 기억을 끌어낸다.
이건명은 이 중 작품을 가장 잘 압축하는 곡으로 이문세의 ‘기억이란 사랑보다’를 꼽았다. “‘기억이란 사랑보다 더 슬퍼∼’ 기억은 가공되고 미화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지나간 시간이 더 아련하고 첫사랑은 애틋한 거죠. 밑에서 끌어 오르는 감정이 너무 세서요. 그걸 누르면서 불러야 하니 미쳐버릴 것 같아요. 회가 지날수록 작품도 감정도 훨씬 깊어질 텐데 걱정이에요. 지난 공연 때 재욱이 형도 감정에 복받쳐서 이 곡을 부르더라고요.”
이건명은 작품이 연말연시에 어울린다고 했다. “겨울이라는 계절과 연말연시는 추억과 통하는 것 같아요. 한 해를 돌아보면서 정리하는 시간이잖아요. 그러다 보면 그 전 추억도 떠오르고요. 지나온 기억을 곱씹어 보게 되죠. 관객들이 극 중에서 첫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피식피식 웃으시더라고요. 마지막에는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하고요. 명우를 통해 기억을 끄집어내세요.” 내년 1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4만∼14만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이건명 “광화문 연가와 함께 추억 속에 빠져보세요”
입력 2017-12-2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