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유빗의 서울 강서구 본사에 19일 투자자 15명이 몰려들어 거세게 항의했다. 유빗은 이날 파산절차를 밟는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김모(47·여)씨는 발만 동동 굴렀다. 그는 “공지를 보고 머리가 띵했다. 나를 포함해 9명이 넣은 돈이 2억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와 함께 사무실을 찾은 김모(30)씨는 “2000만원을 넣어뒀는데 갑자기 75%만 준다고 한다. 그것도 못 믿겠어서 당장 내놓으라고 달려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유빗의 파산 선언을 두고 가상화폐 업계에선 “터질 게 터졌다”는 분위기다. 가상화폐 열풍이 유독 뜨거운 한국에선 사실상 도박장에 가까운 중소 거래소들이 난립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에만 30여개의 가상화폐 거래소가 운영 중이거나 운영을 앞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 대응이 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 당국은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할 수 없고, 가상화폐 거래소에도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범정부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대책도 거래소를 원칙적으로 유사수신업체로 간주한다는 선언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실제 법 개정까지 수개월이 걸릴 전망이다. 그때까지 가상화폐 거래소 업계의 자율규제안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기자본 20억원 이상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거래소를 운영할 수 있지만 강제력은 없다.
금융 당국은 거래소와 관련해 거래 자료를 제출받거나 건전성 점검 등에 나서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행법상 가능하지도 않다. 당연히 피해자들도 해킹 피해 등을 구제받을 수 없고, 개별 소송에 나서야 한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우리가 구제책을 마련하면 더 거래가 폭주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도박판을 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가상화폐 거래소 해킹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를 노린 북한의 사이버 공격이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국가정보원 조사 결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야피존, 코인이즈에서 발생한 해킹 사건은 모두 북한 소행이었다. 북한이 가상화폐를 탈취하면 경제 제재를 피해서 외화를 벌고 수입물품 대금을 결제할 수도 있다.
투자자 피해가 끊이지 않자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가제를 통해 문제가 있는 거래소는 시장에서 퇴출하는 규제방식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상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중소 거래소들은 보안 문제에 언제나 노출돼 있어 해킹 사고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거래소들은 공식적으로 퇴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가상화폐 거래소 인가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가상화폐 공청회에서 “인가제를 도입해 시장을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정부가 금융 영역이 아니라는 핑계로 투자자 보호에 손을 놓고 있다”고 꼬집었다.
나성원 안규영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규제 공백 속 가상화폐 거래소 우후죽순… 업계 “유빗 파산, 터질 게 터졌다” 반응
입력 2017-12-19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