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고린도전서를 둘러싼 논란은 크게 고린도전서의 수신자 범위와 바울의 여성차별주의자 혐의라는 두 가지 쟁점을 두고 벌어진다.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새물결플러스)의 저자 케네스 베일리는 고대 히브리어 문헌에 대한 전문적 이해, 1세기 지중해의 문화적 배경, 4세기 이후 아랍어 시리아어 히브리어 등 23권에 달하는 역본을 통한 비교분석을 바탕으로 오해를 풀어나간다.
먼저 고린도전서가 ‘고린도교회만을 위해 쓴 특수한 편지냐, 아니면 고린도교회를 포함해 전체 교회에 보낸 편지냐’ 여부가 문제가 된다. 고린도교회만을 위해 쓴 편지로 보게 되면 고린도전서에 담긴 바울의 신학적 관점은 오늘날까지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상당 부분 잃게 된다. 실제로 많은 현대 신학자들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있는 음행, 근친상간 등 특수한 문제를 다뤘으며, 내용이 뚝뚝 끊어지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어 “돌아다니며 쓴 편지”라고 주장한다.
베일리는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가 전체 교회에 보낸 편지라 주장한다. 고대 히브리어 문헌은 ‘평행법’이라는 독특한 수사구조를 가진다. 오늘날 흔히 쓰이는 구조는 ‘A-B-C’의 미괄식이나 ‘C-B-A’의 두괄식이다. 하지만 히브리어 문헌은 ‘A-B-C-B′-A′’와 같이 평행 구조를 취하며 가운데에 핵심 주장을 서술한다.
이 같은 주장에 의하면 편지가 중간에 끊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울이 히브리어 문헌의 구조적 특성을 반영해 정교하게 고린도전서를 구성했기 때문이다. 결국 고린도전서는 정교한 다섯 개의 논문으로 짜인 한 편의 치밀한 신학적 저술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다음은 바울이 여성차별주의자라는 혐의점에 대한 갑론을박이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 같은 발언은 맥락 없이 들을 경우 “바울은 여혐(여성혐오주의자)”이라는 일부 주장의 핵심 근거가 된다.
베일리는 우선 여자와 남자가 교회에서 같이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참석하고 있었으며, 바울은 여자가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멈추는 게 아니라 머리에 두건을 쓰라고만 했다고 설명한다. 여성의 일방적인 복종보다 성(性)의 구별에 초점을 뒀다는 것이다. 특히 머리에 두건을 쓰지 않는 것은 당시 문헌과 남겨진 조각상 등 지중해의 문화적 맥락을 고려할 때 신전 창녀들의 모습이었다고 저자는 추정한다.
이어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는 구절에 대해서는 머리를 뜻하는 그리스어 ‘kefale’을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원천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이에 따르면 남자는 여자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먼저 난 존재일 뿐이다. 만약 먼저 난 순서대로 존귀하게 여겨진다면 인간은 앞서 지어진 식물이나 짐승보다 비천한 존재가 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고전 11:9) 역시 여자가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복종해야 할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베일리는 ‘위하여’를 뜻하는 그리스어 전치사 ‘dia’는 다른 역본에서 ‘때문에’로 번역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보면 여자는 인간 ‘때문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남자를 구원하기 위해 보냄 받은 존재가 된다. 곧 바울은 여성의 일방적 복종을 주장한 게 아니라 남녀평등과 상호의존을 주장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항로를 조금만 벗어나도 강한 경고를 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지의 물결을 따라 방치된 섬과 어귀를 탐험한 뒤 충실한 기록을 남기는 길을 택했다고 말한다. 경직된 해석의 틀을 벗고 지중해 인근을 항해하는 기분으로 고린도전서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바울은 정말 여성혐오자였을까?
입력 2017-12-2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