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노 초상’ 귀환… 5대가 ‘한자리’

입력 2017-12-19 20:02 수정 2017-12-19 21:13
문화재청은 19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강노 초상화’를 공개했다. 강노 초상화를 가운데 두고 왼쪽부터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김종진 문화재청장, 강춘식씨(강노 6대손),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 최현규 기자

지난 10월 중순, 해외에 흩어진 문화재의 유통 상황을 조사 중이던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김동현 차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의 한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그림이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화가 강세황(1713∼1791)의 증손인 강노(1809∼1886)의 초상화였던 것이다. 국내 환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재단은 경매에 참여해 31만 달러(약 3억3600만원)에 낙찰 받았다. 재단은 이 초상화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은 19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강노 초상화’를 공개했다. 강현(보물 제589호), 강세황(보물 제590-2호), 강인, 강이오(보물 제1485호)의 초상화를 각각 소장하고 있던 국립중앙박물관은 이로써 강현의 현손인 강노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숙종∼대원군 집권기 진주 강씨 집안 문신 5대의 초상화를 모두 컬렉션하게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 말 무장 ‘강민첨 초상화’(보물 제588호)를 소장한 것까지 합치면 한 집안 6명의 초상화를 갖춘 셈이다.

재단의 강노 초상화 구입은 국립중앙박물관이 마침 한 달 전 서울옥션을 통해 강인 초상화(낙찰가 3억5000만원)를 구매한 직후 이뤄져 뜻 깊다. 진주 강씨 초상화 컬렉션의 화룡점정이었기 때문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김울림 학예사는 “왕실이 아니라 사가에서 그려진 직계 5대의 초상화를 소장하는 경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굉장히 드문 일”이라며 “조선 후기 초상화 변천사와 선비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귀향한 강노 초상화는 그의 나이 71세에 그려졌다. 조선시대 소론 명문가였던 진주 강씨 문중이 배출한 문신 중에는 특히 한성판윤을 지냈던 강세황이 유명하다. ‘시서화 삼절(三絶)’에 능해 예원(藝苑)의 총수로 군림한 그는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했다. 증손인 강노는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중용돼 병조판서를 거쳐 좌의정을 지낸 인물이다. 초상화 속 강노는 은은한 분홍 관복을 입고 호피가 깔린 의자에 앉은 풍모가 예사롭지 않다. 꾹 다문 입에서 대원군과 함께한 노정치가의 관록이 보인다. 피부엔 마마자국과 사마귀까지 그대로다.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는 관념 아래 치밀하게 그려진 조선시대 초상화의 사실정신이 조선 말기까지 면면히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소장자는 서배너에 거주하던 미국인으로, 1년 전 뉴욕의 한 가톨릭교회에서 자산 처분을 위해 나온 걸 구입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내년 8월 서화관에서 이들의 초상화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전시를 마련한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