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가위로 신품종 개발 물꼬

입력 2017-12-19 19:17 수정 2017-12-19 21:56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생명자원부 연구실에서 연구원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적용한 신품종들의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농촌진흥청 제공
세계적 생물학저널 셀(Cell)의 올해 6월호 표지는 토마토였다. 흔하디흔한 토마토가 전면에 나선 배경에는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는 ‘유전자 가위’가 있다. 유전자 가위란 특정 성질·기능·조직을 발현하는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편집’을 통해 보다 뛰어난 종을 만드는 기술이다. 셀 표지를 장식한 토마토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만든 신품종이다. 일반 품종보다 열매가 최대 39% 더 열린다. 수확량은 기존 토마토와 비교해 최대 71% 늘어난다. 무게도 일반 품종보다 19∼22% 무겁다. 그러면서도 기존 품종과 동일한 수준의 당도를 유지한다. 그만큼 질 좋은 토마토가 열리는 것이다. 농촌진흥청의 ‘차세대 바이오그린21 사업’을 통해 탄생한 유전자 가위 토마토는 ‘슈퍼 토마토’라 불러도 될 정도로 유리한 형질만을 지니고 있다.

토마토뿐만 아니다. 차세대 바이오그린21 사업은 2015년 세계 최초로 유전자 가위 상추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어 콩과 담배도 우수한 형질을 지닌 신품종을 육종했다. 민간에선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사과와 배의 유전자 편집에 성공한 사례도 나왔다. 역시 세계 최초다.

정부와 민간에서 유전자 가위에 집중하는 이유는 향후 사업화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자 조작(GM·Genetically Modified) 농산물처럼 다른 유전자를 결합하는 게 아니라 편집을 통해 유전자 배열만 바꾼다. 인위적으로 ‘돌연변이’를 만드는 셈이다. 자연계에서도 무수한 돌연변이가 나온다. 학계는 유전자 가위 농산물이 GM 농산물보다 섭취했을 때 안전성이 높다고 본다.

가격도 GM 농산물보다 싼 편이다. 4세대로 접어든 유전자 가위 기술은 편집 한 번에 드는 비용이 수십 달러다. 시판 사례까지 나온다. 미국은 변색을 방지하는 유전자 가위 양송이의 판매를 세계 최초로 허용하기도 했다. 황규석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은 “향후 10년 내에 모든 농작물 유전체 해독이 완료되고 유전자 가위가 미래 육종기술을 주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국이 유전자 가위 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속도에서 차이를 보인다. 규제 정책이 관건이다. 기술개발 속도가 빠른 미국은 GM 규제 대상에서 유전자 가위 상품을 제외했다. 캐나다나 아르헨티나도 비슷한 입장이다. 반면 한국은 관련 규정을 정비조차 못하고 있다. 황 국장은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