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굶주림 벗어난 아이들… 학교도 다니며 꿈을 키워요

입력 2017-12-20 00:00
박재신 전주 양정교회 목사가 지난 7일 말라위 릴롱궤 인근 살리마 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6일 말리와 장로교회에서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
치소모 자우마군
"배가 부르니 수업에 집중할 수 있어요. 신앙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공부도 열심히 해서 대학까지 가고 싶습니다. 꿈이요? 군인이 되는 거예요."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서쪽으로 70㎞ 떨어진 말리와 마을에서 지난 5일 만난 줄리어스 응오마(13)는 자신의 꿈을 말하며 수줍게 웃었다.


이 마을은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 아동개발사업(Children Development Program)을 진행하는 곳이다. 아동개발사업은 최빈국 말라위에 절망 대신 희망의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 속에서 커가는 희망은 말라위의 미래를 열 열쇠다.

지난 4∼8일 박재신 전주 양정교회 목사, 고후남 기아대책 충청·호남·영남부문장과 함께 희망이 싹트는 현장을 찾았다. 12월 들어 시작된 우기는 말라위를 굶주림의 수렁으로 빠트리고 있다. 옥수수를 파종해 수확할 때까지 4∼5개월이 말라위의 ‘보릿고개’다. 다행히 기아대책의 손길이 닿은 마을에선 생기가 넘쳤다. 학교와 교회, 우물가에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상쾌했다. 아이들은 기아대책의 후원이 없었다면 초등학교도 다니기 어려운 형편이다. 조혼문화가 일반적이어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여자아이는 11∼12세면 결혼한다. 출산율도 높다. 하지만 말라위는 5세 미만 아동사망률이 8.5%에 달할 정도로 높다.

기아대책은 말리와 마을을 비롯해 릴롱궤와 살리마 마을 등 세 곳에서 아동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5일과 7일 방문한 말리와와 살리마 마을에는 주민들이 세운 방앗간과 옥수수 창고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많지 않아도 수익이 나온다. 수익은 마을에 학교를 세우거나 비료를 구입하는 데 사용된다. 말리와 아동개발사업장 실무자인 헤롤드 반자(30)씨는 “창고에 저장한 옥수수는 적정 가격에 판매해 수익을 내고 있다”면서 “이 옥수수는 주민들이 무상으로 제공받은 비료로 농사를 지은 뒤 잉여 수확물을 상환 받은 것으로 수익 창출의 토대”라고 설명했다.

살리마 아동개발사업장 산하의 콴지 마을 창고는 매년 주민 173명에게 비료 2포대(100㎏)를 지원한다. 옥수수 농사를 지을 때 비료를 사용하면 1200㎏가량을 수확할 수 있다. 비료 없이 농사할 때와 비교해 2∼3배 많은 수확량이다. 주민들은 수확한 옥수수 중 500㎏을 창고에 상환한다. 이 마을은 창고를 운영해 얻은 수익금으로 초등학교를 짓고 있다.

성공 사례는 또 있다. 지난 6일 방문한 릴롱궤 차방고구(區)의 ‘희망중·고등학교’는 엘리트 교육의 산실이다. 2014년 문을 연 학교엔 574명이 다니고 있다. 컴퓨터교육을 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교실, 과학 실험실, 도서관을 갖추고 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흙벽돌집에 사는 말라위의 생활수준에 비춰 봤을 때 이 학교의 시설은 최첨단이다. 찰스 지분야(54) 희망중·고등학교 교장은 “이 나라의 유일한 희망은 교육이다”면서 “희망중·고등학교는 말라위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배출하는 기독 사학”이라고 했다.

같은 날 오후 릴롱궤 쓰레기 집하장이 있는 핀예 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에는 ‘모바일 학교’가 찾아간다. 모바일 학교는 기아대책과 기아자동차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트럭에 교과서와 수업 준비물을 싣고 마을을 방문하는 이동식 수업을 말한다. 모바일 학교가 찾아가는 곳에선 급식과 예배, 수업이 함께 진행된다. 이날 핀예 마을의 배식은 오후 3시 시작됐다. 아이들은 옥수수를 반죽해 만든 ‘씨마’와 삶은 계란으로 식사를 했다. 배가 부른 아이들은 예배를 드린 뒤 영어수업에 참여했다. 배식에 참여한 박재신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라위에 큰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며 배식했다”면서 “쓰레기장 옆에 사는 아이들이지만 표정이 무척 밝은 게 인상적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감동을 전했다. 이어 “떡과 복음을 전하는 기아대책의 사역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결실이 놀랍다”고 덧붙였다.

말라위의 아동개발사업장들은 기아대책이 설계한 지역개발을 위한 로드맵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진행되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세 곳의 사업장은 시작한 지 1년(말리와), 7년(릴롱궤), 10년(살리마)씩 됐다. 가장 오래된 살리마 사업장은 2020년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아동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마을의 중심엔 어김없이 교회가 있다. 교회 주변엔 우물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는 학교가 있다. 교회와 우물, 학교가 한 울타리에 있는 전형적인 아동개발사업장의 모습이었다.

릴롱궤 사업장에서 사역 중인 김백만 기아대책 기대봉사단은 “마을의 일상은 평범하면서도 짜임새 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어머니들이 급식을 준비하고 점심시간에 배식한다”면서 “밥을 먹고 나면 함께 예배를 드리고 방과후학습에 참여하는 게 마을의 일상”이라고 설명했다. 방과후학습은 영어와 수학 등 중·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아대책의 해외아동 결연 프로그램이다. 말라위의 아동개발사업장 3곳에만도 줄잡아 1000명 넘는 아이들이 결연돼 급식과 공부, 신앙교육 혜택을 받고 있다. 고후남 부문장은 “아동결연은 한 생명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서 “작은 정성으로 결연아동들이 매일 급식을 먹고 방과후학습에도 참여할 수 있다”며 작은 정성의 기적을 소개했다.

■기아대책 '희망월드컵' 득점왕 치소모 자우마군 "한국 다녀온 후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기아대책이 지난해 개최한 희망월드컵의 우승팀은 말라위였다. 결승에서 케냐를 꺾고 우승컵을 거머쥔 말라위는 4경기에서 무려 23득점을 하며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우리나라와의 경기는 7대 0, 필리핀과는 12대 0을 기록하기도 했다. 경기 후 모든 상대팀 선수를 울렸다고 해서 '눈물 제조기'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당시 희망월드컵에서 득점왕에 뽑힌 선수가 바로 치소모 자우마(17·사진)였다. 9골을 넣으며 '말라위의 힘'을 보여줬던 이 선수를 지난 7일 살리마 마을에서 만났다. 해맑은 미소를 띠다가도 사진만 찍으려 하면 표정이 굳어버리는 수줍음 많은 소년은 "한국이 그립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에 다녀온 뒤 많은 게 바뀌었습니다. 쓰레기도 버리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이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꿈이 생겼어요…." 자우마의 꿈은 회계사다. "회계사가 되고 싶어요. 공부를 잘해야 할 수 있어요. 회계사가 되면 꼭 은행에 취직하고 싶습니다."

자우마는 한국을 기도하는 나라로 기억하고 있다. "한국에서 몇몇 교회에 갔는데 너무 친절했습니다. 무엇보다 새벽과 한밤중에도 기도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기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끝으로 자우마는 모든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저는 기아대책 후원으로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입니다. 저희에게 기회를 주세요."

릴롱궤(말라위)=글·사진 장창일 기자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