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천 작가 23일까지 홈展
日 만화·드라마 명소 찾는 문화 차용
낯익은 풍경을 만화적 언어로 각색
“아나따와 도꼬니 아리마스까(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화면에 나오는 일어 자막과 내레이션이 낯설다. 그런데 영상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은 늘 보는 광화문, 덕수궁 대한문 앞, 파고다공원, 종로 등 서울의 거리다.
이 역동적인 도심을 메우는 이들은 젊은이가 아니라 주로 노인들이다. 이들은 공원에서 바둑을 두기도 하지만 항상 태극기를 흔들거나 ‘미군 철수 안 됩니다’ 같은 피켓을 들고 있다.
신예 김희천(29) 작가가 서울 종로구 두산갤러리에서 개인전 ‘홈(Home)’전을 갖고 있다. 늘 해왔던 대로 이번에도 영상 작업을 내놓았는데 배포 있게 딱 1점이다. 인디 영화라 해도 손색없을 40분 분량의 싱글 채널 비디오다.
그는 재치 있는 방식으로 2017년 한국의 흔한 도시 풍경을 낯설게 보여준다. 영상 작업 홈(Home)에는 가상의 일본 애니메이션 ‘호-무(ホ-ム)’가 삽입돼 있다. 호-무는 소녀 탐정 에리카가 서울에서 실종된 할아버지의 위치 정보를 따라 추적해가는 애니메이션. 작가는 일본에서 팬들이 만화나 드라마 명소를 찾는 ‘성지순례’ 문화를 차용해 작중 화자가 호-무의 무대가 된 서울 곳곳을 찾아가는 형식을 취한다.
2016년 두산연강예술상을 수상한 김 작가는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와 같은 디지털 인터스페이스가 상용화되면서 실제 공간과 가상 공간이 서로 섞이는 경험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데 탁월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문화를 덧입힘으로써 우리 모두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태극기 집회는 아연 낯선 풍경이 되는 식이다.
촛불 집회 1년을 즈음해 다시 대한문과 서울역을 메웠던 보수단체의 태극기 집회가 2017년을 특징짓는 서울의 풍경이 됐음을 새삼 각인하게 되는 것이다. 김 작가는 내비게이션 오작동이라는 있을 법한 설정을 넣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까지 투어 코스에 집어넣는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일부러 태극기 집회를 담으려 의도했던 건 아니다. 지금의 도시의 모습을 찍으려 했는데, 우연히 그게 많이 보였고 시각적으로 인상이 강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보수 노인 문화를 이처럼 청년 문화인 만화 언어를 사용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201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그는 어쩌다 순수미술을 하게 됐을까. “영화감독이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의 질문이 결국 자신들이 알아챈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거든요. 관객과의 대화를 열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선 영상 작품이 필요했었지요.”
대학 졸업생이 겁 없이 만든 영상 ‘바벨’(2015)은 입소문이 나며 일약 출세작이 됐다. 이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에 컬렉션 됐다. 그는 서울시가 주최하는 비엔날레인 2016년 미디어시티서울에 초청 받았고, 지난 9월엔 제15회 이스탄불 비엔날레에도 나갔다. 전시는 23일까지.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애니 덧입은 태극기 집회, 낯선 풍경이 되다
입력 2017-12-19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