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는 대체로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사람마다 정의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름 정의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남을 그 잣대에 끼워 맞춰 사정없이 재단하는 식이다. 문제는 이 잣대를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느냐다. 당신만의 정의를 남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개막한 국립극단의 올해 마지막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오스트리아 빈의 공작(이동준)은 앤젤로(백익남)에게 통치권을 위임하고 떠난다. 앤젤로는 엄격한 법과 정의를 내세워 약혼자를 혼전 임신시킨 청년 클로디오(이기돈)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이사벨라(신정원)는 오빠의 구명을 위해 앤젤로를 찾아간다. 하지만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잠자리를 가지면 오빠를 살려주겠다는 것이다. 앤젤로는 갈등하는 이사벨라를 얻기 위해 각종 논리를 앞세워 설득하기 시작한다. 설득은 강요를 넘어 협박에까지 이른다.
작품은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이다. 겉으로는 희극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도 비극에서 나오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았다. 앤젤로는 “유혹 당하는 것과 죄를 범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엄격한 법 집행을 강조하다가 “남자는 약한 존재”라며 돌변한다. 완벽한 도덕주의자로 명망 높은 앤젤로가 정욕에 사로잡혀 스스로 금지한 죄를 지으려는 것이다. 앤젤로의 이중성은 뒷맛 씁쓸한 웃음을 낳는다. 모순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서다.
‘준대로 받은대로’는 초반에는 단순히 권력과 정의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다가 후반에는 용서와 자비, 자유와 속박으로 경계를 초월한다. 특히 주변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공작이 마치 신처럼 나타나 상황을 정리하는 부분이 그렇다. 공작은 모든 인물을 놓고 함정을 파둔다. 언뜻 보기에는 공작이 나타나 혼란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다른 혼란을 낳는다. 앤젤로의 이중성과 공작의 마무리는 극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
무대는 작품의 주제를 담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중으로 이뤄진 원형의 회전무대는 경사지도록 설계돼 기울어진 권력 관계를 드러낸다. 무대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인다. 정의가 각자 기준에 따라 다르다는 속성을 나타낸다. 무대를 둥글게 감싸는 높은 벽체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감시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합리적으로 보이는 말의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오는 2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권준협 기자 gaon@kmib.co.kr
당신만의 정의를 타인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연극 ‘준대로 받은대로’
입력 2017-12-17 18: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