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범죄액션 흥했지만… 외화 공습에 쩔쩔 [2017 영화 결산]

입력 2017-12-17 22:33
영화 ‘택시운전사’ ‘아이 캔 스피크’ ‘범죄도시’(왼쪽부터). 각 영화사 제공
영화 ‘군함도’ ‘공조’ ‘악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각 영화사 제공
영화 ‘킹스맨: 골든 서클’ ‘청년경찰’ ‘노무현입니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각 영화사 제공
영화계는 올해도 정체기가 계속됐다. 5년 연속 연간 관객 2억명을 돌파했으나 예년과 비교하면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내실은 더 안 좋아졌다. 300만 이상을 동원한 영화가 18편(외화 포함)에 불과하다. 장르적으로는 역사물과 범죄액션물에 편중되면서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졌다.

올해 유일하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은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감독 장훈·누적 관객 수 1218만명)다.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5·18민주화운동을 조명한 영화는 관객의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역대 19번째 1000만 관객 위업을 달성했다. 주연배우의 호연과 작품의 완성도가 호평을 받았다. 촛불 정국을 거치며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국민 의식이 고양된 사회 분위기 또한 흥행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이외에도 다양한 역사물이 극장에 걸렸으나 희비는 엇갈렸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을 다룬 ‘군함도’는 스크린 독과점과 역사 왜곡 논란으로 좌초됐다. 병자호란 배경의 ‘남한산성’은 간만에 나온 수작(秀作)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대중성을 놓치고 말았다. 반면 일제가 남긴 아픔을 성숙한 자세로 돌아본 ‘박열’ ‘아이 캔 스피크’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를 제외하면, 여배우들의 활약은 다소 기대에 못 미쳤다. 여배우가 중심에 설 수 있는 작품 수 자체가 적었다. 김옥빈의 ‘악녀’, 염정아의 ‘장산범’, 김혜수의 ‘미옥’, 문근영의 ‘유리정원’ 정도가 관객을 만났다. 문소리가 연출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여배우는 오늘도’는 의미 있는 도전으로 기록됐다.

상반기 최고 흥행작 ‘공조’(781만명)를 필두로 남성 위주의 범죄액션물이 줄을 이었다. ‘프리즌’ ‘조작된 도시’ ‘불한당: 나쁜 놈들의 도시’ ‘살인자의 기억법’ ‘범죄도시’ ‘꾼’ 등 장르 편식이 나날이 심화됐다.

페미니즘 이슈가 떠오르면서 이 같은 영화들의 범죄 표현 수위나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브이아이피’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잔혹한 범죄 상황을 적나라하게 재연해 뭇매를 맞았고, ‘청년경찰’은 여성 캐릭터와 범죄 묘사 방식에 있어 부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유독 외화(관객 점유율 51.4%·11월 누계 기준)의 약진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높은 인지도와 견고한 팬덤을 갖춘 할리우드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공습이 매서웠다. 스파이더맨이 어벤져스의 일원이 되는 첫 에피소드를 담은 ‘스파이더맨: 홈커밍’(725만명)은 전체 흥행 3위에 올랐다. ‘킹스맨: 골든 서클’(494만명) ‘토르: 라그나로크’(485만명) ‘미이라’(368만명) 등도 선전했다.

다양한 소재의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눈길을 끌었다. 최승호 감독이 MBC 사장 임명 전 선보인 ‘자백’ ‘공범자들’은 국정원 간첩조작사건과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의 공영방송 현실을 각각 다뤄 이슈몰이를 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2002년 국민참여경선 과정을 담은 ‘노무현입니다’(185만명)는 이례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