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신학대생들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성탄의 기쁨을 나누는가 하면 성탄절을 기점으로 용서·사과 캠페인을 펼치면서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교회도 있다. 예수보다 산타클로스를 앞세우는 향락문화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 성탄의 참된 의미를 되새기는 교계 현장을 들여다봤다.
■장신대 ‘광장동 골목골목 크리스마스 축제’
잎이 떨어진 가로수에 빨간색 리본과 반짝이는 전구를 거는 정우(10)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바로 옆 나무에는 사다리에 오른 서현(11·여)이가 황금색 종과 은색 방울을 달고 있었다.
두 아이가 치장한 나무가 끝이 아니었다. 13일 찾은 서울 광진구 광장동 거리의 가로수들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볼 수 없던 풍경이다.
나무를 꾸민 이들은 이 지역 주민들과 장로회신학대(총장 임성빈) 학생들이다. 주민들은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가로수 26그루를 분양받았다. 나무 꾸미기는 장신대가 마을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축제를 열기 전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다.
성탄을 기념해 외관을 꾸미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 6∼7일에는 광장동 내 한 카페에서 주민과 장신대 학생 20여명이 모여 털실로 모자를 떴다. 털모자들은 국제구호개발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가난한 가정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광장동 골목골목 크리스마스 축제'를 이름으로 한 본 행사는 오는 23∼25일 열린다. 음식을 팔고 버스킹 공연이 있는 시장이 열리고 크리스마스 연극과 영화를 선보인다. 가족의 소망을 담은 풍선 날리기 등도 진행된다.
이번 크리스마스 축제에는 '광진구 마을 만들기 지원센터' '광진구 사회적 경제 지원센터' '광장동 주민자치센터' '광장교회' '도시공동체연구소' 등이 동참했다.
축제를 기획하기에 앞서 장신대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대학'을 선언했다. 임성빈 총장은 "학교가 광장동에 터를 잡은 지 6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그동안 얼마나 지역과 소통해 왔는지 돌아보게 됐다"며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데 학교 구성원이 공감했고, 주민들과 교류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전 학생과 교직원이 한 달에 2∼3차례 동네 식당을 찾아 점심식사를 하는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식당 57곳과 연계한 상태다.
장신대는 기획단을 꾸리고 주민들의 요구를 조사했다. 동네를 활기차고 아름답게 꾸미고 싶다는 요청이 많았다. 장신대는 지자체 및 주민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4개월간 크리스마스 축제를 준비하게 됐다.
광장동 주민 김인혜(43·여)씨는 "무엇보다 이웃과 함께한다는 것이 의미 있다"며 "이번 축제는 팍팍하고 고단한 삶 가운데 찾아온 선물 같다"고 말했다.
장신대의 행보는 학교가 소속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 추진 중인 '마을목회'와도 일맥상통한다. 임 총장은 "교회는 세상 속에서 존재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의 요구에 반응해야 한다"며 "신학생들이 목회현장에 나가기 전에 지역의 목소리를 듣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마을 섬김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수원중앙침례교회 ‘사과데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고명진 수원중앙침례교회 목사는 손에 작은 사과 봉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먹음직한 사과가 들어있고, 겉에는 ‘사과는 과거를 풀고, 용서는 미래를 연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 사과는 올해 크리스마스 예배 때 수원중앙침례교회 교인들에게 나눠줄 예정이다. 고 목사는 2년 전부터 먹는 ‘사과(沙果)’를 주면서 ‘사과(謝過)’하는 ‘사과데이’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니사과 5개가 들어있는 사과 봉투를 나눠줬고, 올해는 사과 하나가 들어있는 봉투를 두 개씩 전 교인에게 나눠줄 계획이다. 고 목사는 “하나는 본인이 먹고, 하나는 올해 이 사람하고 만큼은 꼭 (쌓인 감정을)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정중하게 사과를 건네며 사과하길 바란다”며 빙긋이 웃었다.
사과데이 행사는 유대인의 새해 인사 ‘샤나토바’와 그들의 전통에서 착안했다. ‘행복한 새해’라는 뜻의 이 말은 ‘르샤나토바 티카테부’의 줄임말로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좋은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고 목사는 “유대인은 새해가 되면 이 같은 인사를 나누면서 사과를 꿀에 찍어 먹고, 할라빵을 먹는다”며 “사과와 할라빵의 둥근 모양처럼 한 해가 잘 굴러가며 형통하기를 바라고, 꿀처럼 달콤한 새해를 기원하는 그들만의 전통”이라고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타인과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도 화해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만큼 사과하고 화해하는 행위를 중시했다.
고 목사는 “한국 사람들이 이제 감사는 꽤 잘하지만, 한국 특유의 정서상 자기 잘못을 먼저 인정하고 사과하는 건 잘하지 못한다”면서 “특히 어른들이 아이한테 잘못하고도 사과하지 않아 성인이 되고 나서도 어릴 때 상처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2015년 사과데이를 시작한 뒤 남편이 아내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사과하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고 목사는 “먼저 다가가서 용서해줄 사람의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용서하지 않았는데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살기는 편할지 몰라도 그것이 내 삶이나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성탄절에 시작해서 연말까지 사과하고 나면, 용서한 사람이나 용서받은 사람이나 새롭게 새해를 시작할 수 있다. 고 목사는 “한국교회가 먼저 시작한 사과데이가 한국사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 성탄절과 새해를 의미 있게 맞이하는 새 문화로 정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과데이’가 알려지면서 주변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생겼다. 수원중앙침례교회는 다른 교회나 학교, 단체, 누구나 동참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http://central.or.kr/)에 관련 자료를 올려뒀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주민들과 마을 축제의 날로… 사과 건네며 화해하는 날로
입력 2017-12-15 00:00 수정 2017-12-15 00:36